
[더팩트 | 김태환 기자] 금융당국의 생산적 금융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은행권들은 건전성 관리를 우려하고 있다. 생산적 금융의 주요 대상인 중소·벤처 기업이 대기업 대비 건전성이 취약한 만큼, 위험가중자산(RWA) 완화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에서 열린 20개 국내 은행장 간담회에서 "은행이 담보와 보증상품 위주의 영업에 치중하며 손쉬운 이자 수익만 추구하고 있다는 사회적 비판이 있다"며 "건전성 규제로 확보한 여유 자본이 생산적 금융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각별히 신경 써달라"고 강조했다.
생산적 금융은 가계·부동산 등 비생산적 분야에 치우친 자금을, 실물 성장과 혁신으로 연결되는 '생산 부문 전반'으로 돌리자는 정책 기조다.
이억원 금융위원장 후보 역시 첫 출근길에서 생산적 금융으로의 전환을 강조하기도 했다. 이억원 후보자는 "지금 한국 금융의 현실을 보면 부동산, 예금, 대출이 대부분"이라며 "생산적 금융으로의 대전환, 자본시장 활성화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발맞춰 은행들은 중소기업 대출 비중을 확대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5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지난 8월 말 기업대출 잔액은 836조8801억원으로, 전월 대비 6조2648억원 증가했다. 이 중 중소기업 대출은 지난 한 달 동안 3조2763억원 늘어나며 올해 최대 증가폭을 기록했다. 상반기(1~6월) 전체 증가액 1조8578억원을 훌쩍 뛰어넘었다.

문제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상대적으로 건전성이 취약하다는 점이다. 설비·자산 담보가 부족하고, 매출이 소수 고객이나 특정 지역에 집중돼 있어 실적 변동성이 높다.
금융감독원은 발표한 '국내은행의 부실채권 현황(잠정치)'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중 신규로 발생한 기업여신 신규부실채권은 4조9000억원으로 전 분기(4조5000억원)에 비해 4000억원 늘었다.
이 중 대기업(4000억원) 신규부실은 전 분기에 비해 1000억원 줄었지만 중소기업 신규부실(4조4000억원)이 오히려 5000억원 늘었다. 대기업여신 부실채권비율은 0.04%p 하락한 0.41%, 중소기업여신 부실채권비율은 0.13%p 상승한 0.90%를 나타냈다.
이렇다보니 5대 은행의 올해 상반기 말 기업대출 가운데 무수익여신 잔액은 3조5736억원으로, 전년 말보다 5000억원 이상 늘었다. 무수익여신은 3개월 이상 원리금 상환이 이뤄지지 않은 악성채권으로, 손실 가능성이 큰 고위험 자산이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은행이 생산적 금융 대상 기업의 리스크를 떠안을 수 있도록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임종룡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지난 4일 대한상공회의소와 한국경제인협회, 한국중견기업연합회가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개최한 '기업성장포럼 출범식'에서 "현재 환경에서 재무적으로만 보면 은행 입장에서는 주택담보대출이 기업금융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지적했다.
주담대의 경우 담보가 확실하지만, 기업 투자의 경우 손실 위험이 존재하기에 은행 입장에서는 오히려 주담대가 리스크가 적다는 뜻이다.
금융권은 금융당국에 일부 기업금융에 있어 위험가중자산(RWA) 가중치를 낮춰달라고 건의한 상태다. 현재 은행 규제에 대한 국제 기준인 바젤Ⅲ에 따르면 기업대출은 가계대출보다 높은 RWA 가중치가 적용된다. RWA 가중치는 대출을 내주는 기업 신용등급에 따라 달라지며, B+ 등급 이하 기업대출은 150% 위험가중치가 적용되고, BB 등급대는 통상 100%가 적용된다.
이와 더불어 금융권에서는 △정책보증기금을 통한 보증 강화 △재무제표가 아닌 캐시플로 심사 △벤처대출·수익공유형(RBF) 등 혼합금융 확대 등도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신용보증기금, 기보증기금 등에서 부분보증이나 손실부담을 해주면 은행 입장에서는 보다 수월하게 대출이 가능하다"면서 "또 재무제표가 아니라 신용카드 매출이나 전자세금계산서 등 데이터 소스를 활용해 현금흐름(캐시플로) 기반의 심사를 통한 대출심사 도입도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벤처대출을 통해 이자에 성공보수를 얹어 성장에 대한 보상을 받거나 매달 일정 이자 대 매출에 대한 일정 비율을 나누는 RBF 등으로 수익성을 담보한다면 생산적 금융에 대한 은행의 수요도 높아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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