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변호사 자격 없이 롯데그룹 경영권 분쟁과 관련한 법률 자문을 맡은 혐의를 받는 민유성 전 산업은행장(나무코프 회장)이 항소심에서 "프로젝트L의 총괄자는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이라며 책임을 떠넘겼다. 신 전 부회장이 일방적으로 자문 계약을 해지했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을 당시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8-2부는 29일 변호사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민 전 행장의 항소심 2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민 전 행장은 지난 2015년 10월부터 2017년 8월까지 변호사 자격이 없음에도 신 전 부회장을 위한 불법 법률 사무를 한 대가로 자문료·성공 보수 등 총 198억원을 챙긴 혐의를 받는다. 1심에서는 민 전 행장에 대해 징역 3년과 198억원 추징이 선고됐다.
변호사법 위반 문제는 민 전 행장이 신 전 부회장에게 일방적으로 자문 계약 해지됐다며 100억원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민사 1심은 민 전 행장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과 대법원은 민 전 행장이 변호사법을 위반했다고 봤고, 자문 계약도 무효라고 판단했다. 민 전 행장 입장에서는 돈을 더 받아내려다 법 위반 혐의가 드러난 셈이다.
이날 민 전 행장은 프로젝트L 추진 당시 자신의 역할을 축소하기 위해 노력했다. 프로젝트L은 롯데면세점 특허 취득 방해, 호텔롯데 상장 무산, 롯데그룹 수사 유도, 국적 논란 조장 등 민 전 행장과 신 전 부회장이 자문 계약 직후 실행한 '롯데 흔들기' 작업을 말한다. 민 전 행장은 "신 전 부회장과의 자문 계약은 롯데 계열 분리를 위한 계약이었다"며 "프로젝트 리더인 제가 하는 일은 같이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변호사, 회계사, 노무사 등을 코디네이션 해서 신 전 부회장과 소통하도록 돕는 역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법률 자문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게 민 전 행장의 주장이다. 그는 "계약에 법률 서비스는 제외돼 있었다. 만약 법률 자문을 요청하더라도 저는 서비스를 제공할 능력이 없다"며 "프로젝트L은 법무 영역과 비법무 영역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민 전 행장은 "흔히 알려진 롯데면세점 특허 취득 방해, 호텔롯데 상장 무산, 롯데그룹 수사 유도, 국적 논란 조장 등은 제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며 "프로젝트L을 기획, 실행하는 과정에서 총괄자는 신 전 부회장"이라고 주장했다. 신 전 부회장과 롯데그룹을 둘러싼 민형사상 소송에 대해서도 "계획을 수립하거나 자문하지 않았고, 신 전 부회장이 직접 진행했다"고 말했다.
이는 앞서 민 전 행장이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때와 비교했을 때 정반대 모습이다. 당시에는 법률 자문을 비롯한 다양한 영역에서 자신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바 있다. 신 전 부회장으로부터 돈을 받아내기 위한 민사 소송에서는 민 전 행장 자신의 역할을 확대 설명하고, 자신이 돈을 토해내야 하는 변호사법 위반 재판에서는 이를 축소, 나아가 신 전 부회장을 프로젝트의 주동자로 지목한 셈이다. 이날 검사 측도 진술 번복에 대해 문제를 제기했다. 검사 측은 "민 전 행장은 (손해배상 청구) 민사 소송 1심에서는 승소하기 위해 (법무 업무를 포함한) 프로젝트를 총괄했다고 증언했었다"고 짚었다.
이날 민 전 행장 측은 신 전 부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신 전 부회장이 직접 출석한다면 두 사람의 '네 탓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주로 일본에 머무르는 신 전 부회장이 법정에 출석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재판부도 "증인 신청을 채택하고 불러보도록 하겠다"며 "실제로 출석하진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변호인은 다음에 변론을 종결할 준비를 하고 와달라"고 전했다. 다음 기일은 오는 10월 24일이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