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대한항공이 미국에서 7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공식화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이재명 대통령 방미 경제사절단에 동행해 현지 일정을 수행하던 중 발표된 이번 계약은 기단 경쟁력 확보와 동시에 한·미 항공산업 협력 강화라는 의미가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한항공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윌러드 호텔에서 미국 항공기 제조사 보잉, 항공기 엔진 업체 GE에어로스페이스와 각각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밝혔다. 행사에는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 스테파니 포프 보잉 상용기 부문 사장 겸 최고경영자, 러셀 스톡스 GE에어로스페이스 상용기 엔진 및 서비스 사업부 사장 겸 최고경영자 등이 참석했다.
이번 체결로 대한항공은 △보잉 항공기 103대 구매(362억달러·약 50조원) △GE 및 CFM인터내셔널(CFM) 예비 엔진 19대 구매(6억9000만달러·약 1조원) △GE에어로스페이스 항공기 엔진 정비 서비스 계약(130억달러·약 18조2000억원)을 동시에 추진한다.
도입 대상 기종은 보잉 777-9 20대, 보잉 787-10 25대, 보잉 737-10 50대, 보잉 777-8F 화물기 8대로 2030년 말까지 순차적으로 인도된다. 대한항공은 향후 기단을 보잉 777·787·737 시리즈와 에어버스 A350·A321neo 등 5종으로 단순화할 예정이다. 이를 통해 공급력 증대, 규모의 경제 실현, 연료 효율성 향상 및 탄소배출 저감, 고객 서비스 개선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GE에어로스페이스와 CFM으로부터 각각 11대, 8대분 예비 엔진을 구매한다. 동시에 GE에어로스페이스와는 20년간 항공기 28대에 대한 정비 서비스를 제공받기로 했다. 팬데믹 이후 항공기 인도가 지연되는 상황에서 안정적 운항을 확보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는 설명이다.
이번 계약은 미국 항공산업과의 전략적 협력을 강화하고 한미 양국 관계 발전에도 기여할 것으로 평가된다. 대한항공은 보잉 외에도 프랫 앤 휘트니, GE, 해밀턴 선드스트랜드, 허니웰 등 미국 기업과 협력해 왔다. 1971년 4월 서울-도쿄·로스앤젤레스 화물노선, 1972년 4월 서울-도쿄·호놀룰루·로스앤젤레스 여객노선을 개설하며 한미 항공교류의 선구적 역할을 해왔고 현재는 델타항공과 태평양 노선 조인트벤처를 통해 소비자 편의 증대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투자 발표는 이 대통령이 워싱턴DC에 방문 중인 가운데 외신 보도를 통해 먼저 알려졌다. 앞서 조 회장은 이날 열린 한미 정상회담 경제사절단에 최태원 SK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이날 워싱턴DC에서 열린 한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에도 참석해 양국 재계 인사들과 교류하며 한미 경제 협력 확대에 힘을 보탰다.
조 회장이 방미에 나서면서 업계에서는 보잉과의 추가 계약 가능성이 이미 거론돼 왔다. 팬데믹 이후 지연된 인도 물량을 선제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적 필요뿐 아니라 미국 정부가 제조업 지원 기조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대한항공의 대규모 발주가 보잉의 수주 확대와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실제로 이번 계약은 한국 항공사의 기단 경쟁력 강화와 동시에 한미 산업 협력의 상징적 성격을 동시에 띠고 있다는 평가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대표 국적항공사로서 본연의 여객 및 화물운송을 통해 한국과 미국을 긴밀히 연결하는 날개로서의 역할을 다 하는 한편 지속적인 대미 투자를 통해 한미 양국 간의 우호적 관계를 한층 더 증진시키는데 기여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무 부담은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대한항공의 올 상반기 말 연결 기준 총차입금은 처음으로 20조원을 넘어섰고, 순차입금도 13조9000억원에 달했다. 현금성 자산이 6조800억원 수준이지만, 단기차입금과 유동성 장기부채 상환 부담이 5조6000억원에 이른다. 영업활동현금흐름(NCF)은 1조9696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개선됐지만, 잉여현금흐름(FCF)은 마이너스 2716억원을 기록하며 적자 전환했다. 상반기 자본적지출(CAPEX)도 2조원 가까이 집행돼 현금 유동성 부담이 커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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