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급격한 점포 축소와 디지털 전환 속에서 은행권이 '퇴직자 재채용'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숙련된 인력을 비교적 낮은 비용으로 다시 영입해 내부통제를 정교화하고 현장 영업 공백을 메우려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청년 신규채용 여력을 갉아먹는다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규제 환경이 '책무구조도' 도입 등으로 한층 엄격해진 올해, 재채용을 둘러싼 명과 암을 짚었다.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5월까지 최근 5년 동안 5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이 다시 고용한 퇴직자는 5866명에 달했다. 국민은행 2053명, 신한은행 1461명, 우리은행 821명, 농협은행 1084명, 하나은행 447명 순이다. 국회 정무위 소속 김재섭 의원실이 금융감독원 자료를 취합해 밝힌 수치로, 재채용이 '제도화' 단계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은행별 전략도 구체화됐다. 우리은행은 지난달 22일 고경력 퇴직인력을 본부 '내부통제·모니터링·여신감리' 등 리스크 관리 지원부서와 지역 현장의 '기업영업(기업금융 상담)'에 재배치한다고 발표했다. 서류·인적성·면접을 거치는 정식 절차로 선발해 경험과 판단력을 내부통제 체계 강화에 투입하겠다는 구상이다.
국민은행은 올해 상반기 '퇴직직원 재채용(AML 전담)' 공고를 별도로 내 퇴직자를 대상으로 자금세탁방지 등 후선 핵심 업무를 보강했다. 채용은 기간제·직무전담 형태로 공고 기간과 직무가 명시됐다.
임금 체계도 달라졌다. 퇴직자 재채용은 대체로 계약직·기간제 형태여서 정규직 대비 비용 부담이 낮다. 업계에 따르면 은행이 재채용한 AML 전담 인력의 보수는 월 약 256만원 수준으로 소개돼 왔다. 비용 효율을 앞세운 운용 방식이라는 해석이 나오는 배경이다.
재채용 확대의 배경에는 감독기조 변화가 자리한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은행권에 임원별 내부통제 책임을 명확히 하는 '책무구조도'를 본격 시행했다. 금감원도 지난 7월 '은행권 내부통제 워크숍'을 열어 AI 도입 환경에서의 정보유출 리스크, 준법제보 활성화, 책임구조 정착 등을 주문하며 내부통제 고도화를 최우선 과제로 강조했다.
비용 측면에서도 재채용은 '희망퇴직+선별 재고용'과 맞물려 인건비를 관리하는 수단으로 기능한다. 최근 4년간 4대 은행의 해고급여(희망퇴직) 지출은 2조4177억원에 달했다. 그 과정에서 일반관리비와 영업이익 흐름이 맞물리며 2021년 48.9%였던 평균 CIR(영업이익경비율)이 지난해 42.4%로 낮아졌다. 희망퇴직을 늘리고 신규채용을 줄이는 대신 퇴직자를 재채용해 숙련을 확보하는 방식으로 비용 효율을 높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문제는 청년 신규채용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올해 상반기 5대 은행((신한·국민·하나·우리·농협) 신규 공개채용 인원은 약 540명으로 전년 동기(1060명)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은행권 20대 직원 비중도 2022년 12.3%에서 지난해 9.9%로 하락했다.
정책·시장 환경이 맞물리며 '재입사 트랙'은 더 촘촘해졌다. 국민·우리은행은 육아 사유로 퇴사한 직원에게 2~3년 후 원직급 복귀 기회를 주는 '육아퇴직' 제도를 운영하고 은행권 전반에서 희망퇴직 후 기간제·자문역 복귀가 일반화되는 흐름이다. 하지만 이러한 구조가 청년 채용 여력을 줄일 수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지방은행도 흐름을 탄다. BNK경남은행은 준법감시·금소법·심사업무 경력자를 대상으로 퇴직자 재고용 공고를 내고 있다. 내부통제·여신심사 등 경험 의존도가 높은 영역에서 '즉시전력감'을 빠르게 확보하려는 목적이다.
일각에선 내부통제 고도화라는 공익적 목표와 인건비 효율화라는 경영 논리는 재채용을 통해 일정 부분 성과를 내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반면 청년층 유입 둔화가 고착화될 경우 조직의 혁신 동력, 세대 다양성은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도 공존한다.
은행권은 재채용 대상을 내부통제·감사·심사 등 후선 핵심으로 한정하고, 신사업·디지털·리테일 전면에서는 청년과 경력직의 외부 충원을 확대하는 '투트랙'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감독당국이 강조한 책임 구조와 제보 활성화, AI 리스크 거버넌스의 현장 안착 역시 재채용의 실효성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은행권 관계자는 "금감원의 감독기조가 강화된 만큼, 신입보다 경험 많은 퇴직자를 재채용해 리스크 관리·감사 업무에 투입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재채용은 내부통제 강화라는 공익적 효과가 있지만, 단기 인건비 절감 논리와만 결합하면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재채용을 후선·감사 영역으로 한정하고, 디지털·신사업 부문은 청년 인재로 보강하는 '투트랙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