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황지향 기자] HMM이 2조원이 넘는 자사주를 공개 매수해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올해 들어 단일 기업이 집행한 자사주 소각 중 최대 규모다. 업계는 이번 결정을 주주가치 제고 차원을 넘어 공적자금 회수와 향후 민영화 환경 조성까지 염두에 둔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다만 정부가 본사 부산 이전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단기간 내 민영화가 성사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HMM은 전날부터 다음 달 12일까지 약 한 달간 자사주 공개매수에 나선다. HMM은 공시에서 "공개매수 응모주식 수가 취득 예정 수량에 못 미칠 경우 전량 매수하고, 초과할 경우에는 안분 비례 방식으로 매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HMM은 지난 14일 장 마감 후 이사회 결의를 통해 보통주 8180만1526주를 공개매수해 전량 소각하기로 했다. 주당 공개매수가격은 2만6200원으로 소각 예정 금액은 2조1432억원에 이른다.
이번 결정은 지난 1월 발표한 '밸류업 프로그램'의 후속 절차다. HMM은 올해 2조5000억원 이상 주주환원 계획을 밝히고 3월 약 5000억원을 배당으로 지급했다. 이번 조치로 남은 금액을 자사주 매입·소각으로 집행하는 셈이다.
HMM의 최대주주인 산업은행(36.02%)과 한국해양진흥공사(35.67%)가 공개매수에 참여할 경우 각각 약 1조원가량의 현금을 확보하게 된다. 업계에서는 2016년 현대상선 시절 두 기관이 3조5800억원을 전환사채 형태로 투입했던 공적자금이 이번에 처음 회수되는 것이라며 '예정된 수순'이라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자사주 소각은 민영화 논의와도 연결된다. 주식 수가 줄어들면 향후 인수 희망자가 매입해야 할 물량 부담이 완화되기 때문이다. 안병길 해진공 사장은 올해 초 "최대한 빨리 민영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힌 바 있어 이번 조치가 매각 환경 조성의 의미를 띤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러나 당장 민영화가 속도를 내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정부가 HMM 본사의 부산 이전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재수 해양수산부 장관은 내년 북극항로 시범 운항 계획과 연계해 부산 이전을 장려하고 있으며, 정부 지분을 유지한 상태에서 정책 추진력을 확보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분석이 있다.
몸집이 커진 점도 걸림돌이다. HMM의 시가총액은 현재 24조원을 넘어 2023년 하림그룹이 인수를 검토했을 당시 약 6조4000억원과 비교해 4배 가까이 불어났다. 수십조원의 자금이 필요한 만큼 인수 후보군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전략적 투자자를 점진적으로 유치하거나 지분을 분산 매각하는 방식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증권가의 관심은 소각 이후 남는 현금에 쏠린다. 이번 자사주 매입·소각 이후 HMM은 약 12조4000억원의 현금을 보유할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투자증권은 "중장기 발주투자 계획을 감안하더라도 매년 조 단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가능하다"라며 HMM의 현금 여력을 강조했다.
하나증권도 "2030년까지 예정된 장기 투자계획을 고려하더라도 유동성은 충분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해상물류 불확실성으로 운임이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회복되긴 어렵지만, 본격적으로 주주환원이 시작됐다는 점이 더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며 향후 추가 환원 정책이 나타날 경우 기업가치 평가가 한 단계 높아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다만 업황 불확실성은 부담으로 꼽힌다. 글로벌 해운 운임은 여전히 약세를 보이고 있으며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해 상반기 평균 2319포인트에서 올해 상반기 1701포인트로 27% 하락했다. HMM 관계자는 "하반기 관세 유예 종료와 재협상으로 불확실성이 커지고, 지역별 수요 변화에 따른 공급망 혼잡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적도 부진하다. HMM은 올해 2분기 매출 2조6227억원, 영업이익 2332억원을 기록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5%, 63.8% 줄었다.
hy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