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문화영 기자] 현대백화점그룹이 운영하는 패션 전문기업 한섬이 실적 부진에도 고가 브랜드 중심의 '럭셔리'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외 하이엔드 시장 공략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고물가와 소비 침체라는 이중 악재 속에서 이같은 전략이 통할 수 있을지 주목되는 상황이다.
15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한섬의 올해 2분기 매출액은 3381억원, 영업이익은 7억원이다. 이는 각각 전년 동기 대비 1.1%, 82% 감소한 수치다. 당기순이익은 184억원으로 같은 기간 22.4% 줄어들었다.
지난 1분기 역시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1분기 매출액은 3803억원, 영업이익은 218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 대비 3.4%, 32.9% 감소했다. 당기순이익은 184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4% 줄어들었다.
한섬은 최근 폭염과 폭우 등이 계속되고 국내 소비가 위축된 점을 실적 부진의 배경으로 설명했다. 한섬 관계자는 "국내 경기 둔화에 따른 패션 소비 침체 장기화와 이상 기후 등의 영향으로 매출과 영업이익이 감소했다"며 "다만 온라인 신규 고객 유입 및 객단가 상승 등의 영향으로 온라인 부문 매출은 전년 대비 소폭 신장했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 패션업계는 이상기후와 소비 침체 등에 대응하기 위해 SPA 브랜드나 가성비 전략으로 활로를 찾고 있다. SPA 브랜드는 자체적으로 생산 및 유통 구조를 갖추고 있어 저렴한 가격에 고품질 상품을 살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삼성물산 패션부문은 '에잇세컨즈' 매장을 올해 상반기 82개까지 늘렸고 최근에는 필리핀에 1호점을 열며 7년 만에 해외 시장에 재도전했다.
이랜드월드의 '스파오'는 지난해 매출 6000억원을 기록하며 전년 대비 25% 증가했다. 특히 대표 제품인 '3만9900원 청바지'는 누적 판매 100만장을 돌파했다. 이 외에도 신성통상의 SPA 브랜드 '탑텐'은 1조 클럽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온라인 플랫폼 무신사는 가성비 자체 브랜드 '무신사 스탠다드'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처럼 주요 패션 업체들이 고물가 속 '가성비' 전략을 내세우고 있지만 한섬은 '럭셔리'를 내세우며 정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 한섬은 국내 브랜드 SJSJ, 시스템, MINE 등과 함께 랑방, 타미힐피거, DKNY, 클럽모나코 등 해외 수입·편집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해당 브랜드들은 상의와 하의는 30만원대, 아우터는 50만원 이상이 넘는 고가 제품을 주력으로 한다.
아울러 지난달 한섬은 더현대 서울에 '타임 파리(TIME PARIS)' 매장을 오픈했다. '타임 파리'는 글로벌 패션 시장 공략을 위해 출시된 신규 컬렉션으로 '크링클 드로우스트링 집업 점퍼(89만5000원)', '트윌 텍스처 밴딩 크롭 집업 점퍼(98만5000원)' 등 고가 의류를 선보인다.
저가 브랜드와 SPA 브랜드 론칭 및 전략에 대해 한섬 측은 "아직 계획에 없다"고 말했다. 이 가운데 한섬은 프랑스 파리를 거점으로 삼아 글로벌 럭셔리 시장 공략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상반기 부진했던 실적을 하반기 글로벌 포트폴리오 확장을 통해 만회하겠다는 것이다.
캐주얼 브랜드 시스템·시스템옴므는 지난달 '2026년 S/S 파리 패션위크'에 참가해 300여종의 신제품을 글로벌 바이어에게 선보였으며 파리 백화점 '갤러리 라파예트' 오스만 본점에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브랜드 '타임' 역시 지난 6월 '시스템 파리'라는 글로벌 플래그십 스토어를 론칭했다.
한섬 관계자는 "국내 고객 니즈에 맞는 다양한 유망 해외 패션 브랜드를 지속 론칭하며 빠르게 변화하는 패션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백화점 중심의 오프라인 채널에 대한 높은 의존도, 국내 SPA 및 온라인 패션 플랫폼과 경쟁력 약화, 소비 심리 위축 속 고가 마케팅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지속적인 실적 하락에도 고가 중심 전략을 고수하는 것은 고물가 시대에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며 "해외 럭셔리 시장으로 나가는 것도 좋지만 국내 시장에서 입지를 먼저 다져 소비자 접근성을 늘린 후 글로벌로 나아가는 세부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