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스텝에서 완화까지…이창용 '말'로 본 3년 좌표, 마지막 과제는 '속도'
  • 이선영 기자
  • 입력: 2025.08.17 00:00 / 수정: 2025.08.17 00:00
첫 50bp '빅스텝'에서 3.50% 장기 동결, 지난해 10월 전환·올 5월 2.50%
'조건부 가이던스'로 바뀐 한은 소통과 남은 1년의 과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 2월 25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금융통화위원회 금리 결정에 대한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2022년 4월 취임 이후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의 언어는 통화정책의 방향을 가늠하는 좌표였다. 그의 발언을 따라가면 한은이 어떻게 3.50%의 긴 동결을 지나 지난해 10월 인하로 선회하고, 올해 5월 2.50%까지 내렸는지가 보인다. 임기 마지막 해, 남은 시간의 통화정책은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움직일까.

이창용 총재의 '말말말'은 긴축의 정당성과 전환의 명분을 동시에 설명해왔다. 2023년 10월 "상당기간 긴축기조를 지속하면서 추가 인상 필요성을 판단해 나가는 것이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는 발언은 3.50% 동결 기조를 뒷받침했다. 물가가 목표를 웃도는 상황에서 섣부른 완화가 금융불균형을 키울 수 있다는 경계였다.

그러나 2024년에는 톤이 달라졌다. 4월 "당장 서두르진 않겠다"면서도 물가 둔화의 진전과 대외 여건을 확인하며 완화 논의의 '시간표'를 열었다. 7월에는 "디스인플레이션, 성장, 금융안정 간 트레이드오프를 고려하겠다"고 못 박았다. 시장의 조급함을 달래되, 기준금리 조정의 조건을 공개적으로 제시한 셈이다.

결정의 궤적은 선명하다. 2022년 7월 한은 역사상 첫 50bp 인상으로 기준금리를 2.25%로 끌어올린 뒤 같은 해 10월 또 한 번의 50bp 인상으로 3.00%, 11월 3.25%를 거쳐 2023년 1월 3.50%에 닿았다. 이후 2024년 9월까지 장기간 동결이 이어졌다. '고물가·고부채·대외불확실성'이 겹친 환경에서 조기 완화의 부작용을 경계한 결과였다.

전환점은 2024년 10월이었다. 물가 안정 흐름이 뚜렷해지고 가계부채 증가세가 제도적 조치로 둔화되자 금융통화위원회는 3.50%에서 3.25%로 25bp 인하하며 '제약적 기조의 완화'를 시도했다. 이후 추가 인하가 이어졌다. 2025년 2월, 기준금리는 3.00%에서 2.75%로 25bp 인하되며 완화 기조가 본격화되었다.

이어 올해 5월 성장 둔화 압력이 커졌고 물가가 비교적 안정적이라는 판단 아래 2.75%에서 2.50%로 추가 인하했다. 7월 회의에서는 2.50% 동결로 숨 고르기를 택했다.

이 기간 한은의 소통 방식도 변했다. 이 총재는 '조건부 포워드 가이던스'를 도입해 향후 3개월 정책금리에 대한 금통위원들의 견해를 공개했고, 이는 언론에서 '한은식 점도표'로 불렸다. 과거 '전략적 모호성'을 벗어나 조건·리스크·판단 기준을 함께 제시하며 커뮤니케이션을 정교화했다. 국제무대에서도 2023년 11월 BIS 산하 글로벌금융시스템위원회(CGFS) 의장에 선임돼 정책 신뢰도를 높였다.

그의 발언에는 언제나 조건이 있었다. 2023년 2월 첫 동결 당시에도 "인플레이션은 둔화되지만 연내 목표 상회가 지속될 것"이라며 불확실성을 열거했고, 동결이 곧 '긴축 종료'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지난해 4월과 7월에는 디스인플레이션 속도, 가계부채와 환율·자본유출입 등 금융안정 변수, 글로벌 통상·관세 리스크를 동시에 본다는 원칙을 반복 확인했다. 발언의 축은 물가·성장·금융안정의 균형이었다.

이창용 총재의 3년은 빅스텝으로 시작해 긴 동결을 견디고, 조건부 완화로 넘어온 시간이었다. 사진은 한국은행. /이선영 기자
이창용 총재의 3년은 빅스텝으로 시작해 긴 동결을 견디고, 조건부 완화로 넘어온 시간이었다. 사진은 한국은행. /이선영 기자

남은 임기의 통화정책은 '점진적 완화의 경계'에 설 가능성이 크다. 5월 인하 결정 때도 성장 둔화와 물가 안정이 맞물렸지만, 가계부채와 외환시장 변동성에 대한 경계가 병기됐다. 7월 통화정책방향 결정문 역시 "성장은 한동안 낮고 대외 불확실성은 높다, 물가는 대체로 안정적"이라는 판단을 유지했다. 8월 초에는 한·미 통상 이슈 부담이 완화됐다는 소식과 함께 "향후 3개월 내 추가 인하를 지지할 수 있다"는 다수 위원의 시그널이 나왔다. 다만 이런 가이던스 역시 물가가 목표에 정합적으로 수렴하고, 환율·자본유출입·가계부채가 안정될 때에 한해서다.

이 총재의 3년은 빅스텝으로 시작해 긴 동결을 견디고, 조건부 완화로 넘어온 시간이었다. 발언은 때로는 시장의 기대를 누그러뜨리고, 때로는 전환 가능성을 예고했다.

남은 1년, 한은이 지킬 언어는 결국 '조건'이다. 물가 목표에 대한 신뢰, 금융불균형에 대한 경계, 그리고 성장 하방을 완화하려는 최소한의 유연성 사이에서, 그의 '말말말'은 마지막까지 기준금리의 속도와 폭을 가늠하는 공식으로 작동할 전망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물가 신뢰를 우선한 건 분명한 성과다. 다만 전환의 속도·시점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며 "남은 1년은 '완화의 속도'를 금융안정과 어떻게 조화시킬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조건부 가이던스'로 예측 가능성은 높였고, 시장도 그 언어에 익숙해졌다. 다만 해석의 여지는 남았다"면서 "마지막 해에도 데이터에 기반한 점진적 접근이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seonyeo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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