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김정산 기자] 저축은행이 조달 속도를 높이면서 예적금 만기 구조를 평탄화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연말에 가까워질수록 저축은행 예적금 금리는 상승하지만, 올해는 이 같은 공식이 깨질 전망이다.
8일 저축은행중앙회에 따르면 전국 저축은행 79곳의 정기예금(1년물) 평균 금리는 연 3.00%다. 전월 대비 0.01%포인트(p) 상승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정기 예금 평균 금리가 감소한 것을 고려하면 대비 되는 흐름이다.
조달 경쟁에 특히 적극적인 곳은 청주저축은행이다. 지난달 31일 본점과 천안지점에서 연 3.29% 금리를 적용한 정기예금 상품을 출시한 이후, 7영업일째 업계에서 가장 높은 수신금리를 유지하고 있다.
저축은행들이 자금 조달에 나서는 배경은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유동성 확보 차원이다. 통상 저축은행은 수신 자금의 만기를 3년으로 설정하며, 만기 도래가 집중되는 1~3개월 전부터 자금을 사전에 확보한다. 단기간에 자금이 빠져나가면 유동성 위험이 커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주저축은행은 지난해 7~8월에도 고금리 정기예금을 통해 자금을 조달한 바 있다.
대출처가 늘어나도 조달에 힘을 준다. 그러나 지난 2023년을 시작으로 저축은행의 여신 규모는 내림세를 기록하고 있다. 금리 인상 기조와 맞물려 대출 영업 확대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 업계 중론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 저축은행의 여신잔액은 95조7067억원이다. 전년 동기 대비 4.24% 감소했다. 2022년 5월과 비교하면 13.7% 급감한 수치다.
업계에선 유동성 확보 외에도 예적금 만기를 재편하려는 흐름이 확산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예금금리를 낮추되 조달 기간을 분산시키는 전략이다. 기존에는 연말과 연초에 만기가 몰리는 구조였고, 이에 따라 저축은행들은 4분기에 고금리 상품을 집중 출시해 유동성을 확보했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만기 집중 기간에 가까워질수록 수신금리를 급격하게 높여서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라며 "지난 2022년 4분기 기준금리가 높아지자, 저축은행도 급하게 연 5~6% 정기예금을 출시했다"고 말했다.
한동안 저축은행 금리는 하향세를 지속할 전망이다. 이자비용이 순이익에 악영향을 줬던 만큼 2021년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내리겠다는 구상이다. 당시 전국 저축은행의 정기예금 평균 금리는 연 1.89~2.37% 수준이었다.
또한, 7월부터 시행된 스트레스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3단계 규제에 따라 2금융권 주택담보대출, 신용대출, 기타대출이 통합 관리되면서 자금 수요도 줄고 있다. 영업 위축으로 인해 조달 필요성 역시 낮아진 것이다. 과거 신용, 사업자 대출 외에도 '미트론(육류담보대출)' 등의 동산담보대출을 일으켜 수익을 확대했지만, 담보 안정성이 낮아지는 시기엔 건전성 관리가 더 중요해진다.
무엇보다 저축은행권을 보수적으로 만드는 변수는 한도 상향에 따른 예보료율 재산정이다. 건전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회복해야 하는 상황에서, 예보료율 인하에 대한 기대감이 형성돼 있다. 자칫 더 높은 예보료를 부담할 수 있는 만큼 최소한의 유동성만 확보하겠단 셈법이다.
지난 5월 예금보험공사는 올 하반기 중 예보료율 재산정 착수를 예고했다. 예보료란 금융회사가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 지불하는 일종의 보험료다. 저축은행은 업계 중에서 가장 높은 0.4%의 예보료율이 적용된다. 9월부터 예금자보호한도가 1억 원으로 상향돼 예금이 증가하면 증가한 예금의 0.4%를 예보에 추가 납부해야 한다.
일각에서는 예금자보호한도 확대가 금리 인상과 무관하다는 지적도 있다. 대출 규제와 예보료 산정 등 불확실성이 큰 상황에서, 무리하게 금리를 올려 자금을 끌어올 유인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한 저축은행 관계자는 "예금자보호한도 상향을 앞두고 저축은행이 무리하게 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저축은행 조달은 예금금리 상단에서 0.1%p만 인상해도 속도를 충분히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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