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세종=정다운 기자] 워싱턴 D.C에서 오는 25일(현지시각) 예정됐던 ‘한미 2+2 통상 협의’가 돌연 취소된 가운데 '농·축산물' 개방이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인 만큼 ‘협상 카드’로 활용해야 한다고 경제 전문가 등이 제언하고 있다.
◆돌연 취소된 ‘한미 2+2 통상 협의’…농·축산물 개방 정부 입장은
강영규 기획재정부 대변인은 24일 "미국과 예정되었던 2+2협상은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의 긴급한 일정으로 개최하지 못하게 됐다"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오는 25일 워싱턴DC에서 ‘재무·통상 2+2 장관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긴급한 일정을 이유로 우리 정부에 참석이 불가하다는 입장을 전해(한국시각 24일 오전 9시) 회의는 취소됐다.
정부에 따르면 베센트 재무장관의 구체적인 사정은 밝혀진 바 없다. 문제는 미 상호관세 부과 유예를 약 일주일 앞둔 가운데 벌어졌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이 무역협상 타결을 완료한 국가는 △영국(10%→10%) 일본(25%→15%) △베트남(46%→20%) △인도네시아(32%→19%) △필리핀(20%→19%) 5개국으로 상호관세율이 모두 확정됐다.
해당국 모두 미국에 농·축산물 개방을 약속했다. 가장 먼저 무역협상을 타결한 영국은 미국산 소고기 1만3000톤(t)까지 무관세로 하기로 했다. 그 외 베트남(약 4조20억원)과 인도네시아, 필리핀, 일본 모두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를 약속했다.
일본의 경우 이시바 시게루 정권이 지난 20일 참의원(상원) 선거를 앞두고 자유민주당(자민당) 지지세력으로 분류되는 농민들의 표심을 의식해 ‘농산물 개방’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선거에 패하자 태도를 180도 바꿨다.
반면, 우리 정부는 열악한 국내 농·축산업의 현실과 국민 정서 등을 고려해 미국에 요구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모양새다.

◆‘농·축산물’ 협상 트리거…전문가들 "개방해도 국내 경제 영향 미미"
트럼프가 우리나라에 쌀 개방, 사과, 소고기 월령 제한(현 30개월령 미만 수입) 완화 등을 지속 요구하는 만큼, 이번 협상에 ‘농·축산물’ 개방이 이번 관세 협상의 트리거로 작용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농·축산물 개방이 어그러질 경우 미국은 이를 빌미로 우리가 감당하기 어려운 ‘청구서’를 드리내밀 가능성이 높다. 즉 반도체, 자동차 분야의 관세를 일본 등 주요 경쟁국보다 더 높게 맞을 수 있으며 수출로 먹고사는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품의 경쟁력이 약화된다. 특히 트럼프 지난 23일(현지시각)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 "시장을 개방하지 않은 나라에 더 높은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밝혔기에 우리나라 수출 경쟁력에 문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 단장은 "미국은 농산물 개방이 우리에 민감한 문제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집요하게 요구하는 것"이라며 "문제는 우리가 (농·축산물) 개방을 하지 않는다면, 협상에서 다른 걸 내놓으라고 하는 구조"라고 강조했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쌀, 소고기 등 개방이 어렵다는 얘기를 할 필요가 있었나 싶다"며 "미국이, 한국은 일본과 다르다고 인식할 수 있고, 트럼프가 8월 1일 이후 괘씸죄를 걸지 않겠는가 하는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농·축산물을 미국에 개방한다고 해도 실제 국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쌀 개방의 경우 우리나라가 저율관세할당(TRQ) 방식으로 매년 미국산 쌀을 13만2304t 수입하고 있지만, 물량을 늘리려면 세계무역기구 WTO 사무국 회람해야 하는 등 절차가 복잡해 당장 쿼터를 늘리기 어렵다. 소고기 30개월령 수입도 고급화된 국내 한우 농가와 시장이 달라 대체되기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허준영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내산 소고기(고급화)와 미국산 소고기가 일대일 대체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며 "국내 이천 쌀과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나온 쌀(안남미)을 동일한 재화로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정부에서는 정치적 리더십을 발휘해 어떻게든 협상 결과를 좋게 만들자고 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투자 확대 협상 도움될까?…"시간 최대한 끌며 대책 마련해야" 주장도
농·축산물 개방 외 알래스카 액화천연가스(LNG), 대미 투자펀드 조성 등이 ‘협상카드’로 거론되지만 협상에서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스티븐 본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법무실장은 지난 22일(현지시각) 한국 특파원과의 간담회에서 "쌀, 과일, 소고기 등을 개방하면 협상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또 트럼프가 대선후보 시절 우리나라를 ‘머니 머신(Money Machine)’으로 칭한 점을 고려하면 대미투자와 방위비 인상 등은 동맹국의 협력이 아닌 '당연한 일'로 인식할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아울러 트럼프의 ‘블러핑’ 전략에 대응하기 위해 우선 내부 결속을 다지고 최대한 시간을 벌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염명배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이번 일본의 협상을 보면 전형적인 미국의 블러핑 전략이었다"며 "너무 갑자기 오픈되면 (농·축산업) 피해가 생길 수 있어 우리가 너무 앞서 갈 필요는 없고, 시간을 최대한 벌면서 정부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8∼2022년 농가경제 심층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1인 농가의 74.7%(2022년 기준)는 70세 이상으로 대부분이 영세농이다.
한편, 산업부는 "재무부와 미 무역대표부(USTR)와의 2+2 협상은 미 측과 최대한 조속한 시일 내에 개최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라며 "산업부 장관과 통상본부장은 방미 기간(23~25일·현지시간) 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제이미슨 그리어 USTR 대표,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장관, 덕 버검 국가에너지위원장 등 미 정부 주요 인사와의 일정을 예정대로 추진한다"고 이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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