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가, '관행' 같던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겸직 문제된 이유
  • 이한림 기자
  • 입력: 2025.07.14 14:12 / 수정: 2025.07.14 14:12
당국 책무구조도 도입 권고에 고심
KB증권·메리츠증권 선제적 겸직 해제 동참
내부통제 강화 등 대안 제시도
14일 금융투자협회 공시 등에 따르면 KB증권과 메리츠증권은 최근 이사회 의장을 모두 대표이사에서 사외이사로 교체했다. /더팩트 DB
14일 금융투자협회 공시 등에 따르면 KB증권과 메리츠증권은 최근 이사회 의장을 모두 대표이사에서 사외이사로 교체했다. /더팩트 DB

[더팩트|이한림 기자] 국내 증권가에서 오랜 기간 이어져 온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 행태가 도마 위에 올랐다. 지배구조법상 위반되는 사항은 아니지만 당국의 책무구조도 도입 권고에 관행같던 겸직 인사가 문제가 된 것이다. 이렇다 보니 최근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인위적으로 분리하는 증권사가 등장하기도 했다. 여전히 여러 증권사에서 겸직을 유지하고 있으나 이사회 등 내부적으로 묘한 분위기가 감지도고 있다.

14일 금융투자협회 등 공시에 따르면 KB증권은 지난달 말 이사회 의장을 김성현 대표이사에서 양정원 사외의사로 교체했다.

KB증권 관계자는 "내부통제를 선제적으로 강화하는 취지에서 김성현 대표가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을 지난달 말부터 교체하게 됐다"고 말했다.

다만 KB증권의 이번 인사를 두고 의문을 보내는 주주도 있다. 새롭게 이사회 의장이 된 양 이사는 삼성액티브자산운용 CEO 출신으로 2023년부터 KB증권에 사외이사를 맡으면서 올해 3월 임기 만료 후 다시 임기가 연장됐으나, 지난해부터 금호석유화학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있기 때문에 온전히 KB증권에 집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관점에서다.

또한 김 대표가 이사회 의장을 지내면서 성과가 미흡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 대표는 이홍구 대표와 함께 공동대표를 맡고 있지만 5연임을 이어간 '장수 CEO'로, 그간 이사회 의장까지 맡으면서 임기 기간 중 KB증권의 호실적과 자본 확대 등에 공로가 크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KB증권이 밝힌 인사 배경은 '내부통제의 선제적 강화' 차원이나, 책무구조도 도입 권고가 올해 하반기 시작인 7월부터 기존 은행이나 보험사뿐만 아니라 증권사까지 확대되면서 당국의 방침에 화답하기 위한 것 말고는 이번 '겸직 해제'에 대한 원인은 찾기 어렵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달 들어 장원재 대표이사가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을 이상철 사외이사로 변경한 메리츠증권에 대한 평가도 마찬가지다. 메리츠증권은 공동대표 체제인 KB증권과 달리 지난해부터 장원재 대표 옆자리에 김종민 대표를 새롭게 앉히고 각자대표 체제를 통해 서로에 대한 견제와 자체적인 내부통제 구조를 마련해 왔으나 역시 당국의 책무구조도 방침에 선제적으로 대응한 결과로 풀이된다.

메리츠증권도 겸직 해제를 두고 당국의 방향성에 공감한다는 태도다. 메리츠증권 관계자는 "책무구조도를 반영해 대표이사가 겸직하던 이사회 의장을 이상철 사외이사로 교체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엇갈린 반응이 나온다. 우선 대표이사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면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지 않아 당국의 책무구조도 도입에 대한 방향성을 따르기 어려운 것은 물론, 지배구조의 투명성과 독립성 등 측면에서 장기적인 기업가치 제고 방안으로 해석될 수 있다는 해석이다.

당국은 자산총액 5조원 이상 또는 운용자산 20조원 이상의 대형 금융투자회사들은 금융사 임원에게 담당 업무에 따른 내부통제 책무를 배분해 책임소재를 보다 분명히 하도록 하고 있다. 이사회 의장은 대표이사의 내부통제 총괄 관리 의무에 대해 감독할 책임도 있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 같은 자리를 맡는다는 것은 취지에 맞지 않다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 금융감독원(금감원)은 앞서 사전 조사와 컨설팅을 통해 증권사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 겸직을 개선하라고 권고하기도 했다. 금감원이 조사한 국내 증권사의 대표이사·이사회 의장 겸직 비율은 40%(27곳 중 11곳, 5월 기준)였다.

금융당국은 올해 7월부터 기존 은행과 금융지주사에 해당한 책무구조도 도입 권고를 증권사와 보험사로 확대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더팩트 DB
금융당국은 올해 7월부터 기존 은행과 금융지주사에 해당한 책무구조도 도입 권고를 증권사와 보험사로 확대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함. /더팩트 DB

반면 우려도 나온다. 새 정부 출범 후 이사가 회사의 주주의 이익을 우선시에 직무를 수행해야 하는 이사의 충실 법적 의무가 주주까지 확대되는 상법 개정이 국회 문턱을 넘어선 가운데 겸직조차 허용되지 않는다면 기업의 의사 결정 속도가 현저히 늦어질 것이란 관측에서다.

또한 당국의 책무구조도 도입은 권고사항으로 강제성이 없다. 책무구조도 도입은 지난 2025년 1월 국내 은행과 금융지주사에 최초로 도입됐고 올해 7월 2단계로 증권사와 보험사가 대상이 됐다. 당국은 오는 2027년까지 1년에 한 단계씩 최대 4단계로 책무구조도 도입 범위를 넓혀갈 계획이나 권고 이상이 되는 법적 의무화에 대해서는 아직 움직임이 없다.

이에 우려 쪽 입장에 해당하는 증권사들은 당국의 책무구조도 도입 권고사항을 면밀히 검토하면서도 급하게 인사를 내 회사가 흔들릴 여지를 주는 것보다 당국이 우려한 이해상충을 해소하기 위해 내부통제를 강화하겠다는 모양새다.

책무구조도 도입 기준을 충족했으나 이날 기준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겸직하고 있는 증권사는 신한투자증권, 한화투자증권, 현대차증권, IBK투자증권, 유진투자증권, DB증권 등 6개사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당국의 권고 사항을 내부통제위원회 개설 등 감사처를 마련하거나 대표이사의 총괄관리감독 또는 이사회 의결권 제한 등 이해상중을 방지하는 등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다"며 "향후 책무구조도 도입 권고에 대한 당국의 평가가 성과로 나온다면 장기적으로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증권사가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2kuns@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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