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조성은 기자] 국내 제약산업의 기반인 원료의약품의 해외 의존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감염병 치료에 필수적인 항생제 원료의 7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어 중국 내 리스크에 따른 공급망 위기 시 국민 건강이 심각한 위협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전날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국민 건강 안전망 구축을 위한 의약품 제조역량 강화 방안 토론회'에서 첫 발제자로 나선 박완갑 종근당바이오 대표는 "국내 제약산업의 완제의약품 경쟁력은 높지만 그 기반이 되는 원료 공급체계는 외국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며 "가격 수급 불안이 심화되고 유사시 국가 보건 안보에 치명적인 위협이 예상된다"고 밝혔다.
박 대표는 "국내 제약기업의 원료의약품 자급률은 2023년 기준 25.6%에 불과하며 항생제 원료의 경우 국산 비중이 10%가 되지 않는다"며 "특히 필수의약품 중 페니실린-세파계 항생제 원료는 국산화가 미흡해 공급 차질 시 대체 수급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항생제의 핵심 중간체인 6-APA와 7-ACA의 생산은 전 세계적으로 소수 업체에 집중돼 있으며, 전체 생산량의 약 70%가 중국에서 이뤄지고 있다. 국내에선 과거 일부 기업이 해당 원료를 생산했지만 채산성 악화 등으로 모두 중단했다. 이로 인해 한국의 항생제 원료 자급률은 2022년 31%에서 2023년 10% 수준으로 급락했다.
박 대표는 "지금의 구조는 공급망 붕괴를 피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국가 차원에서 전략 원료를 지정하고 생산 기반을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대표는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및 2023년 중국 쓰촨·허베이 홍수 등으로 항생제 제조 공장이 셧다운된 바 있다"며 "기후 위기, 팬데믹, 지정학적 갈등 등이 맞물리면 공급 단절은 시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격 결정권이 중국에 집중된 만큼 가격 협상력이 부재하다는 점도 문제"라며 중국 생산업체 간 담합 가능성도 제기했다.
'국가필수의약품'이란 치료에 필수적이지만 생산 유인이 낮아 국가가 관리하는 품목을 말한다. 한국의 국가필수의약품은 현재 473개 품목에 이르며, 감염병·항암·신경계 치료제 등 생명과 직결된 의약품이 다수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상당수가 안정적으로 공급되지 못하고 있으며, 근본적인 원인 중 하나가 해외 원료 의존도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의약품 자급률도 불균형이 심각하다. 2023년 기준 완제의약품 자급률은 71.6%에 달하지만 원료의약품은 25.6%, 백신은 20% 수준에 그친다. 특히 전체 원료의약품 수입 중 35%는 중국, 15@는 인도에서 들여오는 등 특정 국가 의존도가 높다.
박 대표는 일본과 오스트리아 사례를 들며 정부의 역할 강화를 촉구했다. 일본은 2018년 세파졸린 품절 사태 이후 후생성이 직접 기업에 생산 요청과 설비 투자를 진행했고, 오스트리아는 산도스의 항생제 공장 설립에 약 740억원의 보조금을 지원해 생산기반을 유지하고 있다.
박 대표는 "정부가 공공 인프라 구축과 장기 수요 보장을 통해 공급망 안정을 이끌어야 한다"며 "국산 원료의약품 사용을 촉진하는 정책 메커니즘이 마련돼야 민간 기업도 안심하고 생산에 나설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필수의약품 공급망을 국가안보 자산으로 인식하고 치료제 확보에서 원료 자립까지의 전반적인 전략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날 토론회는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서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한지아 국민의힘 의원이 주최했다. 박 대표를 비롯해 정진현 서울대 교수가 발제자로 참여했으며 이관순 지아이디파트너스 대표가 좌장을 맡고 이삼수 하나제약 사장·이전평 대웅제약 생산본부 오송센터장·소진언 LG화학 CMC연구소장·서경원 동국대 교수·김춘래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정책과장이 토론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