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을 향한 비판 여론이 대학가로 번지고 있다. '불법 비자금' 은닉과 관련해 논란의 중심에 있는 노 관장이 교육 현장인 대학교와 관계되는 일이 생겨나자, 이를 부적절하다고 보는 학생들이 거센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최근 경기대학교에서는 노 관장 방문 소식이 전해지자 "군사정권 관련자와 비자금 의혹 인사가 대학교에 발을 들여선 안 된다"는 학생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 "대학은 진실의 공간…노소영 관장 발 들여선 안 돼"
17일 <더팩트> 취재를 종합하면, 당초 노 관장은 전날 오후 경기대 예술대학을 찾을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럽게 불참 의사를 전했다. 이에 노 관장이 참석할 예정이었던 행사는 노 관장 없이 학생들의 전시 위주로 진행된 것으로 파악된다. 노 관장은 학교 측에 건강상 이유로 참석하기 어렵다고 통보했는데, 이를 놓고 경기대 일부 학생들의 노 관장 방문 반대 시위가 준비되는 등 온전히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를 의식해 일정을 취소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학교 측은 대대적인 환영 행사를 준비한 것으로 확인된다. 학생들에게 전달된 공지글에도 '노소영 관장 경기대 방문 환영 행사'라고 소개되는 등 해당 행사는 별도 강연 없이 오직 노 관장 방문 자체를 기념하는 자리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취재진이 확보한 행사 자료를 보면, 식순은 방문 환영 공연, 학교 측 환영사, 노 관장 방문 기념사, 예술대학 소개 등으로 구성됐고, 정문에는 환영 현수막이 큼지막하게 걸렸다. 학교 안팎에서는 어떤 분야의 최고 지도자를 극진히 영접하는 수준이라는 우스갯소리가 나왔다.
학교 측은 노 관장의 방문 취소에 대해 강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이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게 된 이유로 방문 반대 목소리를 낸 학생들을 지목했다는 전언이다. 학생들은 지난 11일 '노소영 초청 규탄' 대자보를 학내에 걸었다. 이후 학교로부터 대자보 게시 금지 처분(정치적 활동)을 받았음에도 뜻을 굽히지 않고 방문 행사 당일 반대 시위를 준비하고 있었다.
해당 학생들이 노 관장 방문을 반대하는 것은 그를 군사독재의 수혜자이자, 은닉된 불법 비자금의 상속자로 보기 때문이다. 이들은 '노소영 초청 규탄 성명서'를 통해 "노소영은 독재자 노태우의 딸로, 이혼 소송 과정에서 '선경 300억'이라는 메모와 50억짜리 약속어음 6장을 제출해 비자금의 실체를 스스로 인정한 바 있다. 아직 이 비자금은 온전히 규명되지 않았다"며 "이러한 인물이 학문과 진실의 공간인 대학에 발을 들이는 것도 모자라, 이를 환영하는 플래카드가 걸리는 현실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더팩트> 취재진과 연락이 닿은 한 경기대 학생은 "학교가 '재학생 일동이 환영한다'는 허위 플래카드를 사용한 이유를 모르겠다"며 "학생들은 군사독재에 대한 미화를 반대한다. 비자금을 둘러싼 진상이 규명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학교 측은 '학생들을 위해 노 관장을 초청했다'는 입장이다. 학교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예술계에서 영향력 있는 인물이라서 예술대학 학생들에게 좋은 기회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노 관장을 초청한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 부산외대에 '노태우 자료관' 설립…"학생들 분노"
대학가에서 노 관장을 향한 비판 목소리가 나온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부산외대 진보 성향 학생들이 '노태우 자료관 설립'과 관련해 학교 측과 노 전 대통령 일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앞서 부산외대는 노 전 대통령의 북방외교 업적을 기리고 관련 자료를 전시·보존하는 '노태우 대통령 자료관'을 설립한다고 발표했다. 이와 함께 학교는 콘퍼런스 공동 개최를 위한 협약을 아트센터 나비 측과 체결하기도 했다. 체결식에는 노 관장과 동생 노재헌 동아시아문화센터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부산내란청산대학생행동 부산외대 이지언 지부장은 "노태우는 내란범이자 광주 시민을 죽인 학살자다. 그런데, 전국 캠퍼스 최초로 노태우 업적을 기리는 '노태우 자료관'이 부산외대에 만들어진다"며 "내란 세력 청산과 민주주의를 향한 국민 염원 속에서 시대를 완전히 잘못 읽은 시대착오적 자료관이 설립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3주간 '노태우 자료관' 설립 반대 1인 시위와 대자보 부착, 전단지 배포, 서명 운동 등 학내 활동을 진행했다. 학우분들의 충격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며 "학교 측은 '노태우에게 긍정적인 측면도 존재한다', '옹호하는 게 아니라 공과를 객관적으로 바라보자' 등 되지도 않는 소리를 하고 있다. 헌법을 위반하고, 무고한 시민들을 잔인하게 학살해도 학교가 무려 자료관을 만들어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는 내란 동조"라고 덧붙였다.
◆ 비자금 의혹 규명 더뎌…"李 대통령 직접 나서달라"
현재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불법 비자금 실체를 밝혀내야 한다는 지적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이혼 소송을 통해 비자금 은닉 의혹이 불거진 지 1년이 지났지만, 실체 규명이 제자리를 맴돌고 있어서다. 지난해 이혼 소송 항소심 당시 노 관장은 '선경 300억'이라고 적힌 모친 김옥숙 여사의 메모를 제시하며 '이 돈이 SK 성장의 종잣돈이 됐기 때문에 노 관장의 기여가 있다고 봐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고, 재산분할 1조3808억원 판결을 이끌어냈다. 이혼 소송에서 이기기 위해 비자금의 존재를 스스로 알린 셈이다.
시민단체 5·18기념재단은 지난해 10월 노 관장, 노 이사장, 김 여사 등을 조세범 처벌법·범죄 수익 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으로 검찰에 고발했다. 그러나 이후 검찰이 노 전 대통령 일가의 자금 흐름을 파악하고 있다는 내용 외 이렇다 할 소식이 전해지지 않고 있다. 특히 피고발자 소환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검찰의 수사 의지가 의심받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권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서 비자금 환수와 노 관장 등 관련자 수사 필요성이 논의됐으나, 12·3 비상계엄과 탄핵 국면, 조기 대선 등을 거치며 사실상 정치권 관심에서 멀어진 상태라는 평가다. 국감 당시 노 관장과 노 이사장은 법사위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음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불출석했다. 특히 노 이사장이 국감 기간에 노 전 대통령 서거 3주기 추모 행사에 잇달아 참석, "'국감 패싱'으로 국민을 무시하고 노태우 미화에만 몰두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
시민단체 군사정권범죄수익국고환수추진위원회는 비자금 의혹을 규명하기 위해선 "이재명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체는 "지난 1년간 검찰과 국세청에 수많은 고발과 조사 촉구를 했지만, 여전히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한 소환 조사조차 진행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 역시 비자금이 공개된 이래 '노태우 비자금' 당사자들을 직접 불러 청문회 한번 하지 않았다"며 "이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노 전 대통령 은닉 비자금 등 군사정권 과거사를 끝까지 해결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제 국민의 염원인 군사정권 과거사 청산을 최우선으로 해결해 달라"고 요청했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