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준익 기자] 건설업 침체와 공사비 상승에도 불구하고 국내 10대 건설사의 올 상반기 정비사업 수주액이 2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하반기에는 압구정, 여의도, 성수 등 대어급 정비사업지가 시공사 선정에 들어가는 만큼 수주액은 더욱 많이 늘어날 전망이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10대 건설사의 정비사업 수주액은 현재 기준 21조3438억원이다. 이는 지난해 연간 수주액 27조8702억원의 76%에 달하는 수치다. 2023년의 20조원은 이미 넘어섰다. 상반기 기준으로 정비사업 수주액이 20조원을 넘어선 건 2022년(20조원) 이후 3년 만이다.
건설사별로는 삼성물산이 5조213억원으로 가장 많았다. 삼성물산은 올해 목표액을 5조원으로 잡았는데 지난 4월 말 광나루 현대아파트 리모델링 시공사로 선정되며 4개월 만에 초과 달성했다. 삼성물산은 지난해 수주액 3조6398억원과 2006년 달성한 최고액인 3조6556억원도 크게 넘어섰다. 반도체 공장 등 그룹사 물량이 줄어들자 재개발·재건축 수주에 집중하면서 수주액이 크게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이어 포스코이앤씨(3조4328억원), 현대건설(2조9420억원), DL이앤씨(2조6830억원), 롯데건설(2조5354억원), GS건설(2조1949억원), HDC현대산업개발(1조3018억원), 대우건설(6368억원) 순으로 나타났다.
최근까지 10대 건설사 중 올해 수주 실적이 없었던 SK에코플랜트는 지난 15일 서울시 중랑구 면목7구역 재개발 사업을 따내며 마수걸이 수주에 성공했다. 현대건설과 컨소시엄으로 총 도급액은 5958억원이다. 이로써 현대엔지니어링만 수주가 없다. 현대엔지니어링은 지난 2월 서울세종고속도로 사고 여파로 신규 수주를 중단했다.
도시정비사업은 최근 몇 년간 건설사들이 앞다퉈 수주고를 자랑했던 것과는 확연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공사비 인상과 부동산 시장 침체에 따라 건설사들이 선별수주 기조를 강화한 탓이다.
입지가 좋아도 조합이 낮은 공사비를 제시하는 곳들은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해 수주에 나서지 않는 것이다. 또 경쟁입찰에 따른 출혈을 피하려고 수주 가능성이 낮은 곳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서울 재건축 사업장들도 시공사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올해 수주액이 지난해에 육박하는 것은 조합들의 공사비 인상 수용 분위가 확산하면서 건설사들의 입찰참여를 유도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2027년까지 많은 정비사업 물량이 쏟아져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며 "압구정현대 등 강남권을 비롯해 여의도 일대의 우수한 단지들이 줄곧 예정돼 있어 이에 적극적으로 입찰에 임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재건축 조합장은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시장이 경색되면서 조합 운영비 조달이 원활하지 않다 보니 자금운영에 숨통을 트이기 위해 시공사 선정을 서둘러야 하는 분위기다"고 말했다.
올해 하반기에는 대형 정비사업장이 대기하고 있다. 우선 압구정2구역은 오는 18일 입찰 공고를 낸다. 공사비만 2조4000억원 규모로 추산되는데 삼성물산과 현대건설이 시공권을 두고 수주 경쟁을 펼친다.
여의도에서는 대교아파트가 시공사 선정에 나선다. 조합은 이달 입찰공고를 내고 9월 시공사 선정을 위한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공사비만 8000억원 규모인 대교아파트의 경우 삼성물산과 롯데건설이 관심을 두고 있다.
용산에서는 정비창 전면1구역 재개발 사업을 놓고 포스코이앤씨와 HDC현대산업개발이 맞붙었다. 공사비가 약 1조원에 달하고 높은 입지 경쟁력과 사업성을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비창전면1구역 조합은 오는 22일 총회를 열고 시공사를 선정할 계획이다.
성수전략정비구역(1~4지구)도 하반기 시공사 선정 입찰 공고를 낼 계획이다. 성수전략정비구역은 성수동1가 일원에 4개 지구로 대지면적 53만399㎡에 총 55개 동, 9428가구의 아파트 단지를 조성하는 대규모 재개발 정비사업이다.
최근 재건축에 속도가 붙은 서울 양천구 목동신시가지아파트(1~14단지) 역시 건설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가장 먼저 조합을 설립한 목동6단지는 빠르면 연내 시공사 선정에 나설 예정이다. 목동신시가지아파트는 재건축 후 약 5만가구로 탈바꿈 예정이다. 목동 재건축의 경우 낮은 용적률과 높은 대지지분을 갖고 있어 사업성이 굉장히 좋은 곳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또 다른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여의도에서 가장 큰 규모인 시범아파트는 대부분의 1군 건설사들이 관심이 있는 것으로 안다"며 "한강변은 서울에 남은 정비사업장 비교해 사업성과 상징성을 모두 갖췄다"고 말했다.
아울러 지난 4일부터 재건축 규제 완화 내용을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도정법) 개정안 시행되면서 향후 정비사업 물량도 확대될 전망이다. 조합설립 동의 요건이 완화됐고 재건축의 첫 관문으로 통하는 안전진단의 문턱도 낮아졌기 때문이다.
고하희 대한건설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정비사업의 착수요건 완화, 사업절차 간소화 등 정비사업 규제 완화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점은 긍정적"이라며 "다만 대규모 정비사업은 조합설립 및 주민 동의 확보 등 사업 초기 단계에서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는 구조적 한계를 가지고 있는 만큼 소규모주택정비사업 등과 같은 대안적 정비모델에 대해서도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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