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세가 둔화되는 모습을 보였지만,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가 앞당겨지긴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CPI가 연준의 물가 관리 목표치인 2%를 상회하는데다, 아직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의 영향이 반영되지 않아 향후 인플레 우려로 인해 금리 동결 유지가 길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11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는 5월 미국 CPI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4% 상승했다고 밝혔다. 전월 상승률(2.3%)보다 오름폭이 커졌지만, 시장 전망치(2.5%)보다는 소폭 낮았다. 변동성이 큰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는 지난해 대비 2.8% 상승해 전월과 상승률이 같았으며 시장의 전망치(2.9%)를 하회했다.
5월 CPI에는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정책 효과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다. 관세는 수입 → 재고 → 유통 → 최종가격 순으로 반영되기에, 수 개월의 시차가 존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모든 수입품에 기본 10% 관세 부과를 추진하고 중국, 유럽연합(EU), 일본, 한국, 인도, 대만 등 개별 국가들에 대해 24~46% 범위의 상응 조치 관세를 추가로 부과하고 있다. 또 철강 등 특정 부문에 대해 50% 이상의 고율 관세를 매기고 있다. 관세를 부과하면 수입품 가격을 상승시키고, 이는 결국 물가 상승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3월과 4월 미국 기업들이 관세 시행 전에 수입을 앞당겨 물류창고에 비축해, 관세 영향을 받지 않은 상태로 가격 인상을 최대한 미루었다. 또 정책 혼선으로 인해 많은 기업들은 관세 방향성이 확실해질 때까지 가격 인상을 미뤘다.
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실제 관세가 부과된 이후부터는 물가가 상승할 여지가 크며, 올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나 식료품 등의 소비재 가격이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
컨설팅 업체 알릭스파트너스의 브라이언 에셸먼 이사는 "7월부터 소비자들이 영향을 체감하게 될 것이며, 5~15% 가량 제품 가격이 오를 수 있다"면서 "9월부터는 일부 소매업체들이 계산대에서 관세 관련 할증을 추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시마 샤 프린서플 자산운용 수석 글로벌 전략가는 "이번 발표는 예상보다 낮아 안심이 되지만, 관세로 인한 가격 충격이 CPI에 반영되려면 몇 달은 더 걸릴 수 있다"면서 "본격적인 관세 효과는 늦여름 이후부터 통계에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관세 정책의 영향이 CPI에 반영된다면 연준의 기준금리 인하 시기도 늦춰질 가능성이 커진다. 실제, 로이터통신이 지난 5일부터 10일까지 105명의 이코노미스트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103명은 연준이 오는 17~18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4.25∼4.5%로 동결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준은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 이후 3회 연속으로 FOMC에서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응답자의 55%인 59명은 연준이 3분기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봤고, 9월 인하를 점치는 견해가 대다수였다. 42%인 44명은 연준이 4분기나 그 이후 금리를 인하할 것으로 전망했다. 올해 안에 금리를 인하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자도 20명 있었다.
이와 더불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감세안 등 확장적 재정 기조로 인해 연준이 금리 인하에 나설 유인이 크지 않다는 의견도 나왔다.
빌 애덤스 코메리카은행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트럼프 정부의 더 많은 재정 부양책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연준은 금리를 낮춰 경제를 지원할 필요성이 줄어들고 있다고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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