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한림 기자] 기업공개(IPO) 시장에서 중소형사 중심의 딜을 이어가던 키움증권은 지난 2023년 대기업 계열사 LS머르티얼즈(LS머티)의 대표 주관사를 맡아 성공적인 상장을 이끌면서 포트폴리오에 변화를 도모했다. 숙원인 초대형 IB 진입을 노려온 만큼 리테일 중심의 수익구조를 넘어 IPO, 회사채(DCM) 등 기업금용(IB) 부문 수익성 확대도 예고됐다.
그러나 2년째 IPO 시장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하면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LS머트와 함께 8위까지 끌어올렸던 IPO 주관 실적 순위도 지난해 11위까지 떨어졌고, 올해는 상반기 기준 성과가 전무해 불안감을 더한다. IB 역량 강화를 공언한 엄주성 키움증권 사장의 우려도 더해지고 있다.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키움증권이 올해 IPO 대표 주관을 맡아 상장을 시도하거나 준비 중인 기업은 총 9곳이나, 상장에 성공한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이중 2곳(아른, 숨비)은 상장을 철회했으며 1곳(도우인시스)은 당국 심사 승인 단계, 3곳(아이나비시스템즈, 제이피아이헬스케어, 큐리오시스)은 심사가 진행 중이다. 배터리솔루션즈, 에스이에이, 우진산전 등 3곳은 주관 계약만 맺은 곳으로 아직 당국 심사도 신청하지 않은 상태다.
문제는 올해 뿐만 아니라 지난해부터 IPO 부문 실적이 신통치 않으면서 부진이 장기화 조짐을 보인다는 점이다. 키움증권이 주관사를 맡은 곳 중에 마지막으로 증시에 입성한 기업은 지난해 8월 유라클이다. 이후 지난해 말 비교적 문턱이 낮은 스팩 합병 2건을 상장하긴 했으나, 올해 들어서는 스팩 상장마저 철회하는 사례가 이어지면서 IPO 시장에서 키움증권의 이름이 희미해지는 모양새다.
키움증권의 IPO 실적이 8개월째 전무한 배경으로는 우선 키움증권과 대표 주관사를 계약한 예비 상장사들이 연이어 상장을 철회한 것이 꼽힌다. 지난해 11월 키움증권의 창사 이래 첫 코스피 IPO 주관을 기대케 했던 ESS(에너지저장장치업체) 에이스엔지니어링의 상장 철회가 대표적이다.
올해도 키움증권이 주관을 맡은 킥보드 유통기업 아론, 드론업체 숨비가 각각 1월과 2월 상장예비심사 단계에서 자진 철회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인수단에 이름을 올린 롯데글로벌로지스마저 5월 상장을 철회하면서 수익을 내지 못했다.
상장을 철회한 기업들은 IPO 시장이 얼어붙고 현재로서는 원하는 가치를 평가받기 어렵다고 판단해 철회했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이들 기업에 입찰해 주관사를 따내고, 적정 가치를 산정한 증권신고서를 기관투자자들에 내민 키움증권의 책임도 대표 주관사로써 자유로울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키움증권이 브랜드를 리뉴얼할 정도로 공을 들이고 오롯이 준비했던 스팩 상장마저 최근 예비심사를 받지 않기로 결정하면서 업황을 탓하기엔 IPO 부문의 역량 문제가 더욱 크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키움증권은 지난 4월 키움히어로제1호스팩(옛 키움제9호스팩)의 상장 철회 배경에 대해 "보다 완성도 높은 구조로 재출범하기 위한 전략적 판단"이라고 해명했으나, 업계에서는 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운 몸값에 합병을 원하는 기업이 나타나지 않으면서 고배를 마신 것으로 보는 이도 적지 않다.
키움증권이 IPO에서 늘 두각을 나타낸 증권사는 아니기 때문에 시장에 안착해가는 과정으로 보는 견해도 있으나, 부진 장기화에 불안감이 더해지는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사령탑에 오른 엄 사장이 취임 직후 기업금융본부를 부문으로 격상하면서 줄곧 IB 부문 강화를 외쳤고 초대형 IB 도약을 천명하면서 내실 다자기과 외형 확대에 총력을 다하고 있음에도 올해 유난히 각종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시장 질타를 받고 있어서다.
키움증권은 올해 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의 타 증권사 비하 발언, 연이은 주식거래 먹통, 고객 금융소득 신고 오류, 단기성 이벤트로 해외 주식 부풀리기 의혹. 광고 모델의 학교폭력 의혹에도 마케팅 유지 등 연일 논란의 중심에 서 있면서 바람 잘 날 없는 한 해를 보내고 있다. 깊어지는 IPO 부진을 올해 하반기에도 해소하지 못하면 금이 간 시장 신뢰가 더욱 부각될 여지가 높다는 평가도 따라붙는 이유다.
일각에서는 지난해 DCM이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분야에서 유의미한 성과를 내면서 전년 대비 IB 부문 전체 영업수익이 늘었기 때문에 IPO 부문 부진을 두 사업에서 메워 수익성에는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나온다. 다만 관련 사업들은 부채 증가를 초래하면서 향후 재무 건전성이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공존한다.
실제로 키움증권의 올해 1분기 말 기준 우발부채는 자기자본 대비 60%에 육박한 3조원에 달한다. 초대형 IB 자격요건인 자기자본 4조원, 내부통제 시스템, 재무 건전성, 대주주 적격성 등에서 유일하게 자신 있던 자기자본(약 5조원) 규모도 리스크를 감안하면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특히 IPO는 초대형 IB 요건의 핵심 지표인 만큼, 상장 주관 역량 제고 없이는 도약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하반기 IPO 시장의 회복과 더불어, 키움증권이 기업공개 시장에서 다시 존재감을 회복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