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국내 정유업계의 대미 항공유 수출 물량이 4년여 만에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실적 부진의 탈출구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일고 있다. 미국이 허리케인 계절을 맞은 데다 미국과 유럽의 정제설비 폐쇄로 미국의 석유제품 재고가 감소할 것으로 예측되면서 당분간 국내 정유제품 수출은 훈풍을 탈 전망이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정유사들은 지난 5월 한달 동안 미국으로 항공유를 430만배럴 수출한 것으로 파악됐다. 4년 만의 최대치다.
지난 2월부터 대미 항공유 수출 물량은 늘고 있다. 2월 278만배럴에서 3월 304만배럴로 늘어난 데 이어 4월 382만배럴까지 4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였다.
유럽과 미국의 정제설비 폐쇄가 진행 중이어서다. 유럽은 올해 설비 폐쇄가 3건 예정돼 있다. 독일의 쉘(Shell)·브리티시페트롤륨(BP)도 일부 가동을 중단할 예정이다. 하루 15만배럴을 생산하는 영국 페트로네이오스의 그레인지머스 설비는 이미 폐쇄됐다. 해당 세 건의 폐쇄 합산 규모는 약 40만배럴로 유럽 전체 용량의 3%를 차지한다. 세계 시장에서는 0.4% 수준이다. 이에 따라 영국의 3월 석유제품 생산량은 17개월 만의 최저치를 기록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올해 예정된 정제설비의 폐쇄 물량은 약 54만7000배럴로 미국 전체 원유 생산량의 3%다. 이에 따라 올해부터 내년까지 미국 석유제품 재고는 25년만의 최저치까지 감소할 전망이다. 미국이 허리케인 계절을 맞은 것도 국내 정유업계의 호재다. 콜로라도 주립대의 허리케인 예보에 따르면 올해 허리케인은 과거 평균 14개보다 많은 17개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된다. 6월부터 태풍이 형성되기 시작해 8~9월에 가장 강력한 허리케인이 상륙할 것이란 예보다. 미국 정제설비 가동의 최대 리스크가 될 전망이다.
중국 국영업체의 생산량 축소도 변곡점이다. 중국 국영 석유기업 페트로차이나의 정제처리량은 2024년에는 전년 대비 1.5%, 올해 1분기에는 전년 대비 4.7% 축소됐다. 러시아·이란산 저가 원유를 도입하며 누렸던 원가 우위 이점이 사라지면서다.
이에 따라 대미 항공유 수출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여력도 충분하다. 산업연구원의 '국내 지속가능항공유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22년 기준 항공유 수출량 1080만톤, 약 110억달러(점유율 29%)로 세계 1위 수준이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유럽과 미국의 정제설비 폐쇄 및 허리케인 계절 영향으로 한국산 항공유 수입 수요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한국이 필요 물량을 충당해줄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다고 본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달 미국 서부 해안으로 수출된 아시아의 항공유 수출은 1년 만의 최대치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중 대부분은 한국에서 수출된 것으로 보인다. 미국 정제설비 폐쇄 일정을 고려할 때 장기적으로 미국 서부의 항공유 수입은 과거 대비 증가할 전망이다.
항공유를 비롯한 에너지가 미국 관세 품목의 예외인 점도 이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철강과 알루미늄을 비롯해 반도체와 배터리 분야에서 미중 간 관세 압박으로 긴장감이 높아지는데 에너지는 무풍지대에 있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한국이 이미 세계 1위 항공유 수출국으로 경쟁력이 있는 만큼 수출 경쟁력 유지에 힘쓴다는 계획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는 항공유 분야에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항공유 판매가 실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며 "미국 내 일부 정제설비 폐쇄는 단기적인 수출 환경 개선이 될 수 있지만, 상황에 따라 변동이 가능한 상황임. 공급 안정성을 갖추고, 중장기적인 수출 경쟁력 유지에 힘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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