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한림 기자] 정기 주주총회(주총) 시즌을 마치고 이사회 선임을 완료한 국내 증권사들이 늦은 봄인 5월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3~5월 임기 만료와 함께 재선임되거나 짐을 싼 사외이사도 나온 반면, 5월 임기 만료를 앞둔 일부 이사들에 대한 거취나 공석으로 뒀던 빈자리도 하나둘씩 결정되고 있어서다.
다만 증권사별로 연임 기조가 엇갈리고 특색 있는 이사 선임이 이어지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3~4월 정기 주총에서는 3년 이상 장기 근속 중인 사외이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사외이사가 재선임된 반면, 5월은 이사진 수가 많고 최장 임기가 긴 대형 증권사에서도 임기가 만료되자마자 짐을 싸는 사외이사도 등장하고 있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KB증권은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KB증권 본사에서 임시 주총을 열고 유진 오 전 현대차 사외이사와 남혜정 현 감사위원을 신임 KB증권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에 기존 사외이사였던 김창록, 김건식 사외이사가 자리를 반납했다.
KB증권의 신임 사외이사 선임 배경은 기존 이사진의 임기 만료에 따른 선임이다. 산업은행 총재를 역임한 김창록,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인 김건식 사외이사는 모두 2022년 5월부터 임기를 시작해 지난 3년간 KB증권의 성장에 커다란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5월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난 사외이사도 눈에 띈다. 현행법상 사외이사 임기는 최장 6년으로, 1년 단위로 재선임 여부가 결정되는 사외이사는 5번 연임에 성공하면 교체로 가닥이 잡히는 형태다.
2019년 5월부터 미래에셋증권 사외이사를 맡아 이사회 의장직도 역임한 정용선 미래에셋증권 사외이사가 물러나고 송재용 현 사외이사가 이사회 의장 자리를 채운 사례가 대표적이다. 정 사외이사가 물러나 공석이 생긴 사외이사 자리에는 문홍성 전 두산 대표이사가 선임됐다.
한국투자증권도 각각 하나은행 부행장과 김정기, 서울대 보건학과 교수를 지낸 조영태 사외이사를 올해 내보낸 증권사로 꼽힌다. 두 사람 모두 6년 임기를 채우고 용퇴한 케이스다. 단 한국투자증권은 두 사람의 빈 자리에 한 명만 자리를 채우면서 이사진을 줄이는 선택을 단행했다.
여기서 증권업과 전혀 관련이 없던 새 얼굴이 등장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국투자증권 사외이사는 모회사인 한국금융지주 사외이사를 함께 맡는 전통이 있는데, 넷플릭스의 백영재 디렉터가 최근 양사의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한 까닭이다. 이에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플랫폼 1위 업체의 현직 디렉터를 이사진에 합류시킨 한국투자증권이 올해부터 국내보다는 글로벌 사업 강화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KB증권의 신임 사외이사로 새로 선임된 유진 오 사외이사도 이력이 남다르다. 미국 국적인 그는 하버드대에서 사학을 전공하고 글로벌 투자운용사 캐피탈그룹의 캐피탈인터내셔널리서치 이사회 구성원으로 6년, 파트너로 9년 근무하는 등 금융투자업 경력이 있으나 한국에서 첫 발은 자동차 업체인 현대차에서 내딛었기 때문이다. 그는 현대차에서 사외이사 6년 임기를 모두 채우고 물러났다.
특히 유진 오 사외이사는 자신이 사외이사를 맡고 있던 현대차 주식을 꾸준히 취득해 보유하면서 책임 경영에 직접 나서는 사외이사로 주목을 받기도 했다. 현대차 사외이사진 7명 중 장내매입을 통해 현대차 주식을 직접 보유하고 있는 사외이사는 지난해 말 기준 그가 유일했다. 글로벌 투자사에서 잔뼈가 굵고, 현대차에서도 책임 경영은 물론 글로벌 비즈니스 전략 수립 등에 기여한 만큼 적극적인 밸류업(기업가치 제고)과 글로벌 네트워크 강화에 나서고 있는 KB증권이 그를 선택한 이유로도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증권사 내부통제를 강조하고 있는 만큼 사외이사의 역할도 주목을 받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증권사 모두 정기 주총에서 내부통제위원회 설치를 위한 정관 변경 안건을 다뤘고, 대형사가 우선적으로 도입되는 책무구조도도 오는 7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올해 증권사들의 신규 사외이사 선임 배경에는 임기 만료에 따른 세대교체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인사, 다소 생소한 인물이 이사진에 포함되는 등 파격적인 인사도 포함됐다"면서도 "금융 당국이 내부통제를 중요시하고 있는 만큼 리스크 관리 역량도 선임에 반영됐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