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현대자동차가 전기차 주력 모델인 아이오닉 5와 코나 일렉트릭(EV) 생산을 이달 말 다시 중단한다. 글로벌 전기차 시장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에 더해 수출 감소와 재고 누적이 겹친 결과다. 현대차는 올해 들어서만 같은 라인을 세 차례 중단하면서 생산 일정을 조정하고 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오는 27일부터 30일까지 울산1공장 2라인의 가동을 중단한다. 해당 라인은 아이오닉 5와 코나EV 생산을 담당하고 있다. 연초부터 공피치(컨베이어벨트가 빈 채로 돌아가는 상황) 방식으로 부분 가동해 왔지만, 실질적인 수요 회복이 지연되며 재차 중단을 결정했다.
현대차는 최근 사내 공문에서 "5월 초부터 지속된 물량 부족 상황에도 추가 오더 확보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내수 진작 및 고객 부담 완화를 위해 H-슈퍼세이브 특별 프로모션을 실시하며 추가 오더 확보에 총력을 기울였으나 추가적인 물량 확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현대차는 재고 해소를 위해 이달 초부터 아이오닉 5를 대상으로 최대 600만원 수준의 할인을 적용하며 판매 확대에 나섰지만 수요 회복세는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수출 실적도 뒷받침되지 않았다. 올해 1~4월 아이오닉 5 수출량은 9663대로, 전년(2만7476대 ) 동기 대비 64.9% 급감했다. 같은 기간 코나EV도 5916대에서 3428대로 42.1% 감소했다. 월별 수출량은 △1월 1680대 △2월 853대 △3월 511대 △4월 384대다.
전기차 수출 부진은 미국 시장에서 특히 두드러졌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4월 미국향 전체 자동차 수출액은 전년 대비 19.6% 줄었으며 전기차 수출액 역시 2.9% 감소했다. 이는 지난 4월 3일부터 미국 정부가 수입차에 대해 25% 품목 관세를 부과한 조치의 여파로 분석된다. 미국향 수출은 3월에도 10.8% 줄어든 데 이어 두 달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올해 1~4월 기준으로도 미국향 수출은 106억61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3.6% 줄었고 북미 전체 수출도 11.8% 감소했다. 반면 유럽연합(EU)과 아시아 시장에서는 각각 9.7%, 41.3% 증가하며 대조적인 흐름을 보였다.
전기차 수요 둔화가 수출 타격으로 이어지면서 완성차 업계는 생산 계획을 유연하게 조정하고 있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현재까지 확보된 생산 물량만으로도 연말까지는 출고 대응이 가능할 것"이라며 "이후 생산분은 연식 변경이나 추가 인센티브 없이 소화하기 어려운 만큼 생산 속도 조절은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전기차 수요가 꺾였다기보다는 확산 정체 구간에 진입한 상태"라며 "환경부 보조금조차 소진되지 않는 건 제조사 탓이 아니라 구조적인 수요 정체의 결과로 지금 필요한 건 정부와 기업 간 역할 분담과 공동 대응"이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는 전기차 캐즘이 일시적 정체를 넘어 구조적인 흐름으로 굳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배터리 업계 역시 시장 변화를 예의주시하는 분위기다. 한 배터리 업체 관계자는 "최근 완성차 업체들이 생산 일정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셀 수요에도 영향을 줄 수 있어 단기 납품 계획 수립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hy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