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최근 재계가 사업 포트폴리오 리밸런싱(재조정)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경영 환경 변화의 속도가 빨라지면서 이러한 리밸런싱 작업이 필수 경영 전략으로 자리 잡는 분위기다.
14일 재계에 따르면 SK는 그룹 내 각 사업을 점검 및 최적화하는 리밸런싱 작업을 2년째 진행 중이다. 시장 경쟁력과 탄탄한 사업 역량을 보유하고 있음에도 경영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아 성과를 극대화하지 못했다는 반성 아래, 전열 재정비를 시도하고 있다. 최근에는 SK에코플랜트가 반도체 소재 관련 자회사 4곳의 신규 편입을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핵심 사업인 반도체를 중심으로 사업 조정에 나선 것이다.
구체적으로 SK에코플랜트는 전날 SK㈜의 사내독립기업(CIC) SK머티리얼즈 산하 자회사 SK트리켐, SK레조낙, SK머티리얼즈제이엔씨, SK머티리얼즈퍼포먼스를 품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반도체 관련 건설(EPC) 사업과 반도체 리사이클링 사업에 반도체 소재 분야를 강화, 반도체 종합 서비스 사업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성장 기회를 만들어 가겠다는 목표다.
인공지능(AI)도 SK그룹 리밸런싱 작업의 핵심 영역이다. 마찬가지로 전날 SK C&C가 보유한 30메가와트(㎿) 규모의 판교 데이터센터를 SK브로드밴드에 매각(약 5000억원)하는 내용의 안건을 의결했다. 이로써 SK브로드밴드는 총 9개의 데이터센터를 확보, 디지털 서비스 분야 핵심 인프라 사업자로서의 입지를 강화하게 됐다. 회사는 AI·클라우드 수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며 규모의 경제 실현을 통한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SK 관계자는 "SK머티리얼즈와 SK C&C가 보유한 반도체 소재, AI 인프라 사업을 각각 SK에코플랜트와 SK브로드밴드에 집중시키기로 한 것은 중복 사업의 비효율을 걷어내고 미래 핵심 사업 간 시너지를 통해 보유한 지분 가치를 높이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SK그룹은 고강도 리밸런싱 작업 추진에 대한 의지를 지난해 SK이노베이션과 SK E&S 합병을 통해 드러낸 바 있다. 에너지 분야의 내실 경영을 실현하겠다는 차원이었다. 이 합병으로 자산 105조원 규모의 아시아·태평양 지역 민간 최대 종합 에너지 회사가 탄생했다. 회사는 현재 에너지와 미래 에너지를 모두 아우르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해 새로운 성장 그림을 그려나가고 있다.
다른 기업들도 사업 환경 변화에 따른 전략적 리밸런싱을 지속해서 추진하고 있다. 과거부터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치고 있는 LG그룹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LG전자가 에너지솔루션(ES)사업본부 산하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종료하기로 했다. LG전자는 지난 2022년 전기차 충전기 사업을 시작한 이후 완속·급속 충전기 등의 제품을 출시해 왔으나, 시장 성장 지연과 가격 중심 경쟁 구도 심화 등의 어려움을 겪었다. 전기차 충전기 제조를 담당하는 자회사 하이비차저를 청산하고, 냉난방공조 사업에 주력하겠다는 결정이다.
그간 LG전자는 미래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체질 개선을 시도해 왔다. 기업간거래(B2B) 중심 사업 구조를 구축하고, 구독 사업 등 사업 모델의 변화를 적극 가져갔다. 이는 뚜렷한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올해 1분기 기존 주력인 가전과 B2B 사업의 균형 있는 성장에 힘입어 분기 기준 역대 최대 매출(22조7398억원)을 달성했다.
LG의 다른 계열사들도 '선택과 집중'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둔화)을 극복하기 위한 리밸런싱 전략으로 제너럴모터스(GM)와 합작 투자해 미국 미시간주에 짓고 있는 현지 공장을 인수, 단독 공장으로 활용하기로 했다. 생산 거점을 최적화하고, 기존에 투자한 자산을 최대한 활용해 고객 수요에 대응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밖에 사업 재편을 통한 운영 효율화에 집중하고 있는 LG화학은 해수담수화용 역삼투막(RO) 멤브레인 제조 사업 부문인 워터솔루션 사업부의 매각을 검토하고 있다.
롯데그룹 또한 경영 위기를 극복하는 키워드로 '사업 구조 재편'을 제시했다. 렌탈, ATM 등 비핵심 사업을 정리하며 본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고 있다. 포스코그룹도 전기차 캐즘 대응 차원 리밸런싱 전략의 일환으로 이차전지용 니켈 합작 공장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삼성전자와 같이 덜어내기보단 오디오·전장, 공조 등 성장성이 담보된 산업 관련 기업을 인수하며 중장기적으로 사업의 중심축을 다양하게 가져가려는 기업들도 있다.
시장 흐름에 맞춘 기업들의 리밸런싱 시도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큰 틀에서 리밸런싱 작업이 마무리되면 분기별, 계열사별 재편이 이뤄지는 것"이라며 "시장 변화를 정교하게 예측해서 사업 운영을 개선하고자 하는 작업은 앞으로도 계속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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