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정유업계와 석유화학업계가 올해 1분기 실적에서 부진한 성적표를 받아들며 비상등이 켜졌다. 국제유가 하락과 정제마진 악화, 글로벌 공급과잉 등 여러 악재가 겹친 탓이다. 업계는 사업을 매각하고 현금을 최대한 확보하는 등 버티기에 돌입했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정유·석유화학 기업들은 하반기 실적 개선을 기대하고 있지만 경기 침체에 따른 수요 위축과 공급 과잉이 겹치며 불황 장기화를 우려하고 있다.
대표적 변수는 정유사의 수익성 척도인 정제마진이다. 정제마진은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과 운송비 등을 뺀 값으로 지난달 말 기준 배럴당 6.2달러로 손익분기점을 간신히 넘겼다. 일부 시기에는 이보다 낮아져 제품을 팔수록 손해를 보는 상황도 생긴다.
산유국들의 이례적 증산도 국제유가 하락을 부추기고 있다. 앞서 OPEC과 주요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는 원유 가격 하락과 수요 약화 전망에도 불구하고 4월부터 6월까지 하루 약 100만배럴을 증산하기로 했는데 7월 하루 41만1000배럴 추가 증산 여부를 다음달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이같은 흐름이 반영돼 정유 4사는 일제히 1분기 실적이 악화됐다. HD현대오일뱅크는 1분기 영업이익이 311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89.8% 감소했다. 에쓰오일은 1분기 매출액 8조9905억원, 영업손실 215억원을 기록해 적자전환했다. SK이노베이션은 1분기 매출액 21조1466억원, 영업손실 446억원을 기록했다. GS칼텍스는 매출액 11조1138억원, 영업이익 1161억원으로 각각 전년 동기보다 6%, 72% 감소했다.
정유사들은 저유가에 따른 수요 회복 모멘텀이 생길 때까지 자금 조달로 버틴다는 전략이다. 만기가 도래하는 회사채를 대체하고 실탄을 확보해 최대한 불황을 버티려는 의도다.
HD현대오일뱅크는 최근 신종자본증권을 발행했다. 국제결제은행(BIS) 자기자본비율 산정 시 회계상 부채가 아닌 자본으로 간주된다. 전방산업의 현금 창출력이 낮아졌을 때 기업이 실탄을 확충하기 위해 신종자본증권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석유화학 업계도 비상에 걸렸다. 롯데케미칼은 올해 1분기 잠정실적 기준 매출액 4조9018억원, 영업손실 1266억원을 기록했다. 직전 분기 대비 적자폭이 감소하긴 했으나 지난 2023년 4분기 이후 6개 분기째 적자를 냈다. 한화솔루션은 303억원 흑자를 기록했으나 직전 분기에 비해 영업이익이 72% 줄었다. LG화학의 석유화학부문은 영업손실 565억원을 기록했다.
중국발 공급과잉이 배경이다. 중국은 정부 주도로 석유화학 설비를 대폭 증강했고 자국에서 소비하지 못한 물량을 저가로 쏟아내고 있다. 석유화학 업계의 대표적 수익성 지표인 에틸렌 스프레드(에틸렌 가격에서 원료인 나프타 가격을 뺀 값)는 5월 1주 기준 235달러로, 손익분기점으로 여겨지는 300달러를 크게 밑돌고 있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S&P 글로벌은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이 심각한 공급과잉에 직면해 2029년 이후에야 점진적 회복이 가능할 것"이라며 "생존을 위해 에너지 최적화, 원료 유연성 향상, 스페셜티 제품 포트폴리오를 위한 명확한 로드맵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분석했다.
업계는 일단 몸집을 줄여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LG화학은 선제적인 현금 확보를 위해 워터솔루션 사업 부문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LG화학의 워터솔루션 사업 부문은 바닷물을 산업용수로 사용할 수 있게 정화하는 역삼투막(RO멤브레인) 필터를 제조한다. 최근 전남 여수 지역 사택 일부를 폐쇄 후 통합 운영에 들어갔다.
롯데케미칼은 울산공장 생산직 장기 근속자 등을 대상으로 명예퇴직을 진행하고 있다. 처음으로 인력 감축 대상에 생산직까지 포함됐다. 그간 롯데케미칼은 조직 슬림화를 위해 미등기 임원 수를 2022년 102명에서 2023년 95명, 지난해 말 78명으로 줄이며 임원 중심으로 구조조정을 진행해 왔지만 생산직까지 포함된 건 처음이다.
업계 관계자는 "1분기 실적이 다소 개선됐다고는 해도 적자 폭이 감소한 정도라 불황을 이겨내기는 힘들다"며 "2분기에도 잘 돼야 하는데 (낙관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zzang@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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