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황준익 기자] 재개발·재건축 조합이 시공사를 두고 몸살을 앓고 있다. 공사비가 크게 오르거나 수주 당시 내건 공약을 이행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경우 시공사 교체를 추진하면서다. 하지만 새 시공사 찾기가 어려운데다 기존 시공사로부터 손해배상 소송에 휘말리면서 이에 따른 사업 지연과 금융비용 등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시공사를 교체하는 과정에서 조합원들 간 갈등도 커지고 있다.
2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용산구 한남2구역 재개발 조합은 지난 27일 총회를 열고 '대우건설 시공사 지위 재재신임' 찬반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 결과 전체 852명 중 439명이 대우건설과 공사 계약을 유지하는 데 찬성했다. 반대는 402명, 기권은 11명으로 집계됐다.
대우건설은 2022년 11월 한남2구역 재개발 시공사로 선정됐다. 수주 당시 '118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고도 제한을 90m에서 118m로 완화하고 층수는 기존 14층에서 21층으로 높이겠다고 약속했다. 구역을 가로지르는 관통도로 폐지도 공약했다. 이 프로젝트는 롯데건설을 따돌리고 시공사로 선정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후 진척이 없었고 이듬해 9월 조합은 대우건설 재신임 총회를 열었다. 대우건설은 1년 유예기간을 요청했고 재신임을 받았다. 하지만 118 프로젝트는 현실화되지 못했다. 조합은 118 프로젝트에 책임을 물어 시공사 교체에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조합이 대우건설이 선택한 건 사업 지연에 따른 손실 때문이다. 한남2구역은 지난해 말 용산구청에 관리처분계획인가를 신청했다. 용산구청은 현재 심의를 진행하고 있다. 용산구청은 시공사 교체시 다시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일정이 늦어지면 그만큼 금융비용도 커져 조합원 분담금 역시 늘어난다.
이번 총회에서 대우건설의 시공사 지위는 유지됐지만 조합은 반으로 갈라졌다. 반대에 표를 던진 조합원이 400명이 넘는다. 조합장은 시공사 교체에 직까지 걸었다. 향후 사업을 추진하는 데 있어 조합 내 갈등이 지속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시공사와 공사비 갈등을 빚다 조합 측이 계약을 해지했지만 다른 시공사를 찾지 못하거나 더 높은 금액에 계약한 사례도 있다. 서울 노원구 상계주공5단지의 경우 2023년 1월 GS건설과 공사비 3342억원(3.3㎡당 650만원), 공사 기간 48개월에 시공사 계약을 맺었고 같은해 11월 계약을 해지했다. 소유주들이 높은 분담금을 수용하지 못했고 계약 조건도 불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상계주공5단지는 지난 2월 25일 시공사 재선정에 나서면서 예정 공사비를 770만원으로 올렸다. GS건설 선정 당시보다 120만원 높다. 또 이곳에 관심을 보였던 현대엔지니어링이 발을 뺐고 HDC현대산업개발, 한화 건설부문도 입찰에 나설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상계주공5단지 소유주들은 정비사업위원회 위원장과 위원 해임을 추진하고 있다.
서울 강서구 방화6구역 재건축 조합은 지난해 9월 시공사(HDC현대산업개발)의 공사비 인상을 문제 삼아 계약을 해지했다. 지난달 삼성물산이 수의계약을 위한 시공사 선정 입찰에 단독으로 참여했다. 하지만 이전보다 3.3㎡ 공사비는 더 올라갔다. 공사비 갈등에 따른 착공 지연으로 조합원 부담도 커졌다.
정비업계에선 시공사 교체 바람은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시공사가 원자재값 상승을 이유로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고 있지만 조합 입장에서 늘어난 공사비는 추가분담금으로 돌아오기 때문에 합의가 쉽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결국 법원이 조합과 시공사간 소송에서 시공사에 대한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고 있고 시공사 교체로 얻는 이익이 크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사비 갈등으로 교체했지만 정작 이전보다 공사비가 올라 사업성이 떨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공사비 갈등 끝에 조합은 압박 용도든 어쩔 수 없든 시공사 교체 카드를 꺼낸다"며 "하지만 기존 시공사가 증액한 공사비보다 낮아진다는 보장이 없고 사업 지연과 브랜드만 바뀌게 된다"고 말했다.
plusik@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