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골프장 운영사 DB월드에 자본잠식에 빠진 금속업체 DB메탈을 합병하는 안이 금융 당국 승인을 최종 통과했다. DB그룹이 DB월드 중심의 지배구조 개편에 속도를 내는 가운데, 반도체 수탁생산업체인 핵심 계열사 DB하이텍의 소액주주 반발은 거세지고 있어 배경에 관심이 쏠린다.
2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DB월드가 신고한 DB메탈과 합병 증권신고서를 승인했다. 이달 초 DB월드의 합병안에 대해 정정신고서 제출을 요구했다가 DB월드가 합병 의지를 강력히 피력한 정정신고서를 제출하자 최종적으로 받아들인 결과다.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DB월드는 DB메탈 합병 후 DB메탈의 강원 동해시 송정동 합금철 공장용지 중 절반가량인 10만평의 유휴부지를 개발해 부동산 사업을 확대하고, 한때 국내 1위 합금철 생산업체에서 중국의 저가 물량 공세에 자본잠식 상태까지 추락한 DB메탈의 올해 흑자전환 등 실적 개선도 이루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양사의 합병비율은 1대 0.0362402, 합병가액은 각 1만1341원, 411원이다.
DB그룹 관계자는 "DB메탈의 대규모 유휴부지를 확보하고 DB메탈 자회사 DB월드건설의 시공능력과 결합함으로써 부동산 개발시행·설계관리·시공·관리 및 운영까지 부동산업 전 영역에서 역량을 내재화해 종합부동산회사로 발전하고 합금철 제조업까지 사업을 다각화할 것"이라고 합병 배경을 설명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의 반대는 여전하다. 최대주주인 DB하이텍의 소액주주 지분이 줄어드는 대신 오너일가의 지분이 늘어나는 것과 과거 DB월드와 DB메탈에 지속적으로 DB하이텍 자금을 끌어다 쓴 것이 아니냐는 의혹 등이 DB하이텍 주주들의 주주가치를 저하하는 요인이라는 해석에서다.
우선 양 사의 합병이 완료되면 DB메탈이 소멸하는 흡수합병 형태이기 때문에 DB하이텍이 보유한 DB메탈 지분 28.83%은 사라진다. 또 DB하이텍의 DB월드 지분율은 지배구조 변경에 따라 현 81.8%에서 72.1%로 약 10%가량 줄어든다. 반면 오너일가인 김남호 DB그룹 회장의 보유 지분은 기존 3%에서 6.9%로 2배가량 늘어난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이 DB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에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은 배경은 지분 변경이나 자본잠식 중인 DB메탈의 수익악화 뿐만이 아니다. 피합병회사가 소멸하는 흡수합병인 탓에 DB메탈이 보유한 채무까지 DB월드가 끌어 않으면서 지배구조 상 DB하이텍에 부실 여파가 고스란히 퍼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소액주주들은 DB하이텍이 지난해 DB월드에 890억원가량의 유상증자로 금전적 지원을 이미 한 사례가 있었으며, 과거 DB메탈이 은행에서 2023년 1542억원의 지급보증금을 제공받을 때 김 전 회장도 함께 보증을 섰다는 오랜 의혹도 다시 제기하고 있다. DB그룹은 김 전 회장의 빚보증 의혹은 과도한 해석이라고 일축했으나, 소액주주들은 합병 반대에도 당국 승인이 이뤄진 만큼 오너와 관련한 주주가치 저하 요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는 모양새다.
김 전 회장에 대한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의 불만은 현재에도 진행형이다. 주주들은 지난달 경제개혁연대를 통해 김준기 전 회장과 장남인 김남호 현 회장 등 오너일가가 DB하이텍에서 명확한 역할이나 책임이 없는 미등기임원으로 있으면서도 받아 가는 연봉이 지나치게 과도하다며 업무집행지시자인 김 전 회장 등 4인에 지난 4년간 지급된 연봉인 238억원 전액을 회사에 되돌려놓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DB하이텍은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26.52% 줄어든 1950억원으로 감소했으나 김준기 전 회장과 김남호 현 회장은 각각 DB하이텍으로부터 34억5300만원, 24억6400억원을 수령했다. 이중 김 전 회장은 2017년 가사도우미 피감독자간음죄 및 비서 성추행 혐의로 고발돼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집행유예 4년 등을 선고받은 후에도 창업주이자 주요 주주로서 계열사 전반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DB하이텍 소액주주들의 합병에 대한 우려는 주가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있다. 22일 DB하이텍은 전 거래일 대비 2.31% 내린 4만2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지난달 3월 21일 최고 5만400원까지 거래됐으나 4월 7일 금융당국이 DB월드의 DB메탈 합병신고서를 승인하자 하루에만 8.91% 급감하면서 3만7800원까지 떨어졌다. 이후 소폭 반등했으나 여전히 3개월 기준 고점 대비 20.23% 내려와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DB하이텍은 반도체 업황 악화에도 지난해 양호한 실적을 거두고 올해는 업황 회복과 함께 실적 전망치가 상향 조정되고 있고, 주주환원을 높이는 밸류업 공시를 냈는데도 늘 그룹 내 지배구조 개편 대상이 되면서 주가가 정체되고 있다는 우려가 지속돼 왔다"면서도 "이번 합병 또한 지난해 DB하이텍에서 받아 간 DB월드의 유상증자 금액으로 DB메탈을 구제하는 데 쓰이게 되는 꼴로 비칠 수 있기 때문에 김 전 회장의 지급보증이 얽혀있다는 의혹마저 더해지면서 반발이 거세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