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 | 김태환 기자] 보험업계에서 대형 보험사와 중소형 보험사 간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 신회계제도인 IFRS17 도입 후 장기 보장성 보험 상품 확대가 중요해지면서 사업비 투입이 어려운 중소형사들의 점유율이 하락한 데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자본조달 측면에서도 낮은 신용도로 시장의 외면을 받으면서 수익성 악화가 재정건전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이에 회사 규모에 따른 규제의 차등적용 등의 제도적 보완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22일 보험업계에 따르면 5개 대형 손해보험사(삼성·DB·메리츠·현대·KB)의 지난해 순이익은 총 7조418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2% 증가한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했다. 반면, 이들을 제외한 나머지 26개 손보사(재보험사 포함)의 지난해 순이익은 1조 974억 원으로 1년 전보다 39.4% 감소했다.
생명보험 5개 대형사(삼성·한화·교보·신한·농협)의 지난해 합산 순이익은 3조6860억원으로 전년 대비 11.9% 늘었다. 반면 나머지 17개사의 순이익은 같은 기간 0.8% 줄었다.
보험업계에서는 양극화의 주된 원인이 IFRS17 도입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IFRS17은 부채를 현재 시점으로 평가하게 되는데, 보험계약서비스마진(CSM)이 클수록 수익성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 CSM의 경우 일정 시점마다 상각돼 수익이 되는데, 한 상품이 10년 동안 100억원의 이익을 낼 것으로 예상되면, 매년 10억원이 보험사의 수익으로 인식되는 것이다. 때문에 CSM 상각이익은 CSM이 많을수록 커지고, 수익(보험손익)으로 직결된다. 실제, 이 때문에 IFRS17가 도입되면 절대적인 보유 계약 수가 많고 우량 계약이 많은 대형 보험사의 순이익이 증가하게 된다.
반면 중소형 보험사는 대형사와의 경쟁을 위해 좀 더 저렴하고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단기보험이나 무·저해지 보험 등의 상품 비중이 높다. 무·저해지 보험은 보험료가 저렴하지만, 계약 해지 시 돌려주는 해약환급금이 없거나 적은 상품으로, 금융 당국이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보수적으로 가정하라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서 수익성 악화로 이어졌다.
무·저해지 보험은 가입 초기에 해지환급금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구조지만, 일정 기간 이후부터는 급격히 환급금이 늘어나는 구조라 회계상 부채가 과소 계상될 수 있다는 문제가 있다. 이 때문에 해지환급금 지급 가능성이 낮다고 보고 계상해야 할 부채가 작아져 이익이 과대계상될 수 있어 금융당국은 보수적인 가정을 적용하라고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가이드라인대로 무·저해지 보험의 해지율을 낮게 설정하면 CSM이 줄어드는 효과가 나타난다.
손보업계 관계자는 "대형사 대비 중소형사들은 브랜드 인지도 측면에서 낮아 소비자들에게 외면받는다"면서 "중소형사 입장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상품성을 끌어올리게 되고, 이는 다시 손해율 상승으로 이어져 수익성이 악화되는 문제가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IFRS17 이후 강화되는 지급여력(K-ICS)비율 등 자본 규제 강화도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으로 분석된다. K-ICS비율을 높이려면 자본확충 능력이 중요한데, 상대적으로 낮은 수익성을 가진 중소형사가 신용등급이 낮아지고, 자본조달이 어려워지는 악순환이 늘어난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의 자본조달은 유상증자와 신종자본증권·후순위채 발행 등이 있는데 중소형사들은 비상장사이거나 수익성 악화에 따른 신용등급 하락으로 자본조달 측면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면서 "특히 고위험 상품이나 신상품 개발시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자본 적정성이 유지돼야 하는데 중소형사는 자본이 제한돼 보수적인 상품 운영으로 이어지게 돼 신사업 진출에도 어려움을 겪을 여지가 크다"고 설명했다.
양극화를 완화하려면 규제 차등화와 더불어 중소형사들에 대한 자본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또 다른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사의 규모와 재무 위험도 등에 따라 감독보고서 제출 주기 늘리거나 내부통제 기준을 일부 완화하는 등의 규제 차등화를 제공하고, 중소형사들을 대상으로 공적자금 대출과 세제 혜택 등을 지원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중소형사의 독자적 상품 개발을 지원하고, 독점권인 '배타적사용권'의 기한을 늘리는 방안도 제시된다.
생보업계 관계자는 "라이나생명의 치아보험, 캐롯손해보험의 퍼마일보험과 같이 중소형사만의 독보적인 상품이 나오기도 하는데, 중소형사만의 특화된 상품 개발 지원책이 필요하다"면서 "특히 창의적 상품에게 독점권을 부여하는 배타적사용권의 기한을 개월 단위가 아니라 연단위로 제공하는 등 기한을 늘려 혜택을 강화하는 방안도 고려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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