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중삼 기자] 안전을 최우선 경영 가치로 내세우던 대형 건설사들이 체면을 구겼다. 연이어 발생한 중대재해 때문이다. 시공능력평가 4위 현대엔지니어링과 7위 포스코이앤씨가 대표적이다. 올해 들어 잇따른 사고에 주우정 현엔 대표와 정희민 포스코이앤씨 대표가 고개를 숙였다. 국토교통부가 밝힌 '규제영향분석서'에 따르면 건설사고 사망자 수는 매년 200명을 웃돈다. 이 가운데 약 25%는 시공능력평가 100대 건설사에서 발생하고 있다. 국토부는 사망사고가 발생한 건설사 명단을 공개할 계획이다. 이에 건설사들은 예산을 확대하고, 예방 캠페인을 전개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건설사들이 안전관리 강도를 한층 높이고 있다.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지난 15일 서울 서초구 반포3주구 재건축 현장에서 추락사고 예방과 안전문화 확산을 위한 릴레이 캠페인을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안병철 삼성물산 부사장(최고안전보건책임자)은 "경영진을 중심으로 건설현장 사고 예방을 위한 현장 점검과 안전활동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물산에 따르면 오세철 대표이사 등 주요 경영진은 올해 1분기에만 30회 이상 현장을 직접 방문했다.
DL건설은 최근 '위험공종 안전 실명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이 실명제는 시공사의 현장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한 제도다. 이 제도에 따라 2m 이상 고소 작업, 1.5m 이상 굴착·가설·철골 구조물 공사, 2m 이상 외부 도장·승강기 설치 공사 등 작업 구간에 실명제 표지판을 설치해야 한다. DL건설은 다음 달부터 이를 현장 점검에 반영하기로 했다. 2분기부터는 분기제도 평가 항목에 적용해 진단 현장 선정·재발방지 대책 마련에도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DL건설 관계자는 "작업자와 관리자 간 책임 구분을 명확히 하고, 사고 발생 시 책임 소재 역시 투명하게 추적할 수 있어 현장의 안전의식을 한층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설명했다.
대한건설협회 차원에서도 안전사고 예방 행보에 나섰다. 협회는 다음 달 23일까지 건설현장 추락사고 예방을 위한 릴레이 캠페인을 추진한다. 삼성물산·현대건설·대우건설·GS건설·SK에코플랜트·한화 등이 참여한다. 각 업체 CEO가 매주 차례대로 현장을 방문해 현장 근로자들과 소통하며 안전 점검을 시행할 방침이다. 협회 관계자는 "안전한 건설산업 환경 조성을 통한 지속 가능성 확보·이미지 개선이 필요하다는 공감대 아래, 캠페인을 시작하게 됐다"며 "이번 캠페인은 단순한 형식적 행사에 그치지 않고, 실질적 안전문화 확산을 위해 기획됐다"고 전했다.
안전예산도 확대하고 있다. 대우건설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22년 기준 본사 22억6000만원, 현장 1226억9000만원이던 안전보건 예산은 2023년 본사 46억9000만원, 1447억8000만원으로 각각 107.5%, 18.0% 증가했다. 현대건설은 2021년 1349억원이던 안전경영 투자비용을 2023년 2399억원(77.8%)으로 늘렸다. 현대엔지니어링도 2021년 449억원에서 2023년 1189억원으로 안전보건 투자비를 확대했다. 이 외에도 삼성물산·GS건설·포스코이앤씨 등도 안전 관련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다.
◆"불운하게 발생한 사망사고 등 안일한 인식 거둬야"
대형 건설사들의 안전경영 노력에도 건설현장 사망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핵심 원인으로 '안일한 인식'이 거론된다. 비용만 투자할 것이 아니라, 실질적인 안전 인식 개선도 동반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용갑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토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시공능력평가 상위 20위 건설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자 수는 35명으로 전년(25명) 대비 25.0% 늘었다. 지난해 주요 건설사 가운데 현장에서 사망자가 가장 많이 발생한 곳은 대우건설(7명)이었다. GS건설·포스코이앤씨(각 5명), 현대건설(3명)이 뒤를 이었다.
국토부가 내놓은 규제영향분석서는 "건설사고 발생의 책임이 있는 건설사 등은 사망사고 발생에도 해당 현장에서만 불운하게 발생한 것으로 안일하게 인식하고 있다"며 "안전보다 경제성을 우선해 감안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업계에서도 위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전관리를 확대하고 있다"면서도 "투자 확대에도 모든 현장과 근로자 개인을 관리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안전 장비가 마련돼도 안전 인식 부족 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하는 경우도 많다"고 설명했다.
이재용 산업안전지도사는 "최고경영자(CEO)부터 관리책임자, 괸리감독자, 근로자 등이 중대재해에 대한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며 "각 현장에 적합한 위험성 평가를 실시하는 등 안전을 확보한 이후 작업하는 문화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박상우 국토부 장관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열린 '건설산업 경쟁력 강화와 건설안전을 위한 토론회'에서 "아무리 좋은 기술과 정책이 도입된다고 해도 근로자의 안전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건설업의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토부, 사망사고 발생 건설사 명단 공개
국토부는 건설사고 감축을 위해 사망사고 발생 건설사 명단 공개를 재추진하기로 했다. 시공사의 안전 책임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CEO 책임도 강화한다. 건설사 CEO가 직접 현장을 찾아 근로자 안전을 챙기도록 독려하고, 그 실적은 기술형 입찰 시 평가에 반영해 가점을 부여한다.
사고 예방·재발방지를 위한 현장점검도 강화한다. 관계기관과 불시 특별합동점검을 실시해 부실시공과 안전관리 미흡 사항에 대해서는 엄중 조치한다. 특히 현장점검시에는 감리·시공사·점검자가 직접 시스템 비계에 올라가 안전성을 확인하고, 안전보호구 지급·착용 여부도 중점 점검할 방침이다.
또 추락사고 발생 시에는 해당 건설사 본사 차원에서 전 현장을 자체 점검해 점검 결과와 재발방지 대책을 제출하도록 하고, 이를 검토해 미흡한 현장은 특별점검을 추진한다.
김태병 국토부 기술안전정책관은 "충분한 안전시설 설치와 교육을 통한 근로자의 안전의식 개선, 안전문화가 정착된 현장 조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어떤 제도 개선이나 지원보다도 건설사 CEO와 임원진이 관심을 갖고, 직접 현장을 찾아 근로자 안전을 확인하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최태호 고용부 산재예방감독정책관은 "작업 전에 노사가 함께 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이를 개선하는 노력이 추락사고를 막는 기본적이고도 가장 중요한 안전 수칙"이라며 "노사 모두 경각심을 가져줄 것을 당부드린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