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국내 조선업계가 글로벌 발주 감소세에도 불구하고 수익성 중심 체질로의 전환에 성공하며 올해 1분기 실적 방어에 성공했다.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군함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한 전략이 성과로 이어졌고, 원화 약세와 철강재 가격 하락 등 외부 요인도 실적 개선을 뒷받침했다는 분석이다.
21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국내 조선업계 '빅3'인 HD한국조선해양, 삼성중공업, 한화오션의 올해 1분기 합산 영업이익 컨센서스(증권사 평균 추정치)는 8272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84.2% 증가한 수준이다.
업체별로는 HD한국조선해양이 5192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24.09%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중공업은 1506억원으로 93.32% 증가하고, 한화오션은 1574억원으로 197.54%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적 호조의 핵심은 LNG선, 대형 컨테이너선, 군함 등 고부가가치 선박에 집중한 '선별 수주 전략'이다. 특히 LNG선 건조 비중은 지난해 4분기부터 전체 수주의 40%를 넘어서며 수익성이 낮은 저가 수주 물량이 대부분 해소된 상태다.
외부 환경도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원화 약세는 수출 비중이 절대적인 조선업 특성상 환차익을 키웠고, 주요 원자재인 후판 가격이 안정세를 보이면서 제조원가 부담을 덜어줬다.
국제해사기구(IMO)의 온실가스 배출 규제 강화는 국내 조선업계에 또 다른 기회로 작용하고 있다. 선박 개조 수요가 급증하면서 글로벌 선박 개조 시장은 오는 2028년까지 약 42억달러(약 5조8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기존 선박에 탈탄소 설비를 탑재하거나 연료 시스템을 전환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며 "기술력과 개조 경험이 축적된 국내 조선사들이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중국 조선업계의 약진은 중장기적으로 위협 요인으로 꼽힌다. 영국 조선해운시황 전문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중국은 지난해 4645만CGT(1711척)를 수주해 전 세계 시장의 71%를 차지했다. 한국은 1098만CGT(250척)로 17%에 그쳤다. 중국은 최근 LNG선, 대형 컨테이너선 등 고부가 선종까지 영역을 확장하며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있다. 상대적으로 빠른 건조 속도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수주 경쟁에서 존재감을 확대하는 중이다.
국내 조선업계는 양적인 성장보다 수익성과 지속 가능성에 방점을 둔 '질적 고도화' 전략에 속도를 내고 있다. 친환경 선박 기술 확보, 디지털 설계 플랫폼 도입, 스마트 조선소 구축 등 기술 기반 역량 강화에 집중하는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는 "예전처럼 물량 위주의 수주만으로는 어렵다"며 "이익이 남는 수주 구조, 글로벌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있는 기술력, 연관 산업과의 유기적 연계가 조선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미중 간 해양 패권 경쟁 등 글로벌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면서 국내 조선업계에 우호적인 외부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미국이 자국 조선업의 경쟁력 회복을 추진하면서 동맹국인 한국 조선사와의 협력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7일(현지시간) 중국 해운사와 중국산 선박을 운영하는 해운사, 외국에서 건조된 자동차 운반선 등에 미국 입항 수수료를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미국의 자국 조선업 재건 기조의 연장선상에서 나온 이번 조치는 한국 조선업계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 같은 흐름은 민간 차원을 넘어 정책·전략 협력으로 확장되는 분위기다. 최근 미국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산하 퍼시픽포럼 기관지 '팩네트'는 박진호 국방부 정책자문위원의 기고를 통해 "미국 조선업 재건에는 한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박 위원은 "미국은 자국 조선소만으로 해군력을 유지하기 어렵다"며 "한국과 같은 동맹국과 협력하는 것이 현실적인 해법"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적 협력 파트너로 한화오션과 HD현대중공업을 언급했다. 한화오션은 필리핀 수빅조선소 인수를 통해 미 해군의 정비(MRO) 사업을 수행 중이고, HD현대중공업은 미국 테라파워와 함께 2030년까지 소형 모듈형 원자로(SMR) 추진 선박을 개발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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