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하나증권이 그간 유명무실하다는 지적을 받던 제도를 활용한 서비스를 만들어 금융당국의 혁신금융서비스(금융 샌드박스)에 선정돼 주목을 받는다. 하나증권을 시작으로 8년째 표류하던 외국인 통합계좌 서비스가 증권사 전반으로 확대할지 관심이 쏠린다.
14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이달 초 정례회의를 열고 4건의 혁신금융서비스를 새롭게 선정했다. 하나증권의 '외국인 통합계좌를 활용한 해외증권사 고객 대상 국내주식 거래서비스', 한국평가정보의 '소상공인 대상 신용평가등급 발급서비스', 카카오뱅크와 전북은행의 '공동대출 서비스', 디렉셔널의 '개인 기관 대상 주식 대차 플랫폼' 등이 이름을 올렸다.
혁신금융서비스는 기존 금융서비스의 제공 내용이나 방식, 형태 등에서 차별성이 인정되는 금융업이나 이와 관련된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제공되는 서비스에 대해 규제 적용 특례를 인정하는 제도다. 올해 4월 기준 총 549건의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돼 시장에서 테스트되고 있고, 1회에 한해 최대 2년까지 추가 연장이 가능하다.
특히 혁신금융서비스로 선정된 곳은 별도의 금융업 인허가 없이 지정 받은 범위 내에서 자격을 얻어 서비스를 영위할 수 있고 금융관련법령 규제에 대해 특례가 인정되는 혜택을 받는다. 또 테스트베드 비용지원 등 다양한 혜택도 받을 수 있어 증권사를 포함한 다수 금융사가 새로운 서비스에 대한 시장 인식을 살필 때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이번 혁신금융서비스에 선정된 하나증권의 외국인 통합계좌를 활용한 해외증권사 고객 대상 국내주식 거래서비스 역시 시범 운용 차원에서 선정된 것으로 보인다. 하나증권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해외의 현지 증권사를 통해 국내주식을 더욱 손쉽게 거래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일각에서는 하나증권이 올해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를 활용해 혁신금융서비스에 나선 것을 두고 의문을 보내고 있다.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는 지난 2017년 국내에 처음으로 도입된 후 단 한 곳의 증권사도 이용하지 않았던 제도이기 때문이다.
외국인 통합계좌는 외국인이 국내 증권사 계좌를 직접 개설하지 않아도 글로벌 자산운용사나 현지 증권사가 대표로 국내 증권사에 계좌를 개설한 후 개인투자자로부터 개별 주문을 받아 함께 주문을 넣을 수 있는 제도다.
다만 그간 외국인 통합계좌 개설이 0건인 배경에 대해서는 해외 금융사들이 국내 주식을 사고 싶어 하는 개인투자자들에게 주문을 받고, 외국인 통합계좌로 일괄 주문을 넣을 때 투자 내역을 당국에 보고해야 하는 의무가 담겨 있어 부담을 느낀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국내 증시를 좌우하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한국 주식 투자 행위를 일부 저해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 개선을 위해 국내에 법인을 두고 있지 않은 해외 금융사도 계좌를 개설할 수 있거나 당국 보고 의무 등 규제를 완화하는 다양한 개선 방안을 살펴 왔다. 하나증권이 이에 발맞춰 서비스를 만들어 혁신금융서비스로 신청했고, 금융당국 취지도 맞아떨어지면서 혜택을 부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지난해 말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가 폐지되면서 올해부터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하나증권의 경영 방침과 서비스 신청이 맞아떨어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나증권은 지난 2월 외국인투자솔루션팀을 신설해 비거주외국인 손님 확대에 나서기도 했다.
조대현 하나증권 WM그룹장은 "30년 넘게 유지된 외국인 투자자 등록제가 폐지되면서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내투자 또한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된다"며 "제도 개선에 맞춘 내부 프로세스, 시스템 개선 등을 통해 비거주외국인 투자자들이 손쉽게 투자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하나증권을 시작으로 자기자본 순위가 비슷한 증권사들이 개선 움직임을 보이는 외국인 통합계좌 제도를 활용해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하나증권은 지난해 말 기준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NH투자증권, 삼성증권, KB증권, 메리츠증권에 이은 자기자본 순위 6위 증권사로 삼성증권과 메리츠증권을 포함해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자기자본 4~5조원대 증권사와 초대형IB 도전을 위해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외국인 통합계좌를 활용한 하나증권의 이번 서비스가 혁신금융서비스로 지정됐지만 시범 운용 성격이 강한 만큼 실제 외국인 투자자 유치에 대해 유의미한 성과를 낼지는 미지수"라면서도 "(하나증권이)자기자본이나 규모, 재무안정성, 실적 등에서 초대형 IB 지정을 위한 조건을 두루 갖춘 만큼 혁신금융서비스 선정으로 완화된 규제를 활용해 성과를 낸다면 금융 당국의 초대형IB 심사에서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