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시장 예상치를 밑돌면서 인플레이션 둔화 신호를 보냈다. 다만 3월 CPI는 전 세계 자본시장을 뒤흔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관세 정책이 반영되기 전 수치로, 물가나 금리를 판단할 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10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노동부 발표에 따르면 3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2.4% 상승했다. 다우존스가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2.6%를 0.2%포인트 밑돈 수치다.
전월 대비로는 오히려 하락하면서 시장이 예상한 0.1% 상승과 대조적인 결과가 나타났다. 3월 휘발유 가격이 전월 대비 6.3% 급락하면서 시장 전망을 크게 벗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변동성이 큰 에너지와 식품 물가를 제외한 근원 CPI도 모두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다. 3월 CPI는 전년 동기 대비 2.8%, 전월 대비 0.1% 상승해 2021년 3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전문가들이 전망한 근원 CPI는 전년 동기 대비 3.0%, 전월 대비 0.2% 상승이었다.
CPI가 시장 전망치를 웃돌면 인플레이션에 대한 억제가 계획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판단한다. 반대로 3월 CPI처럼 모든 수치가 전문가 전망 수준을 밑돌면 인플레이션이 둔화하고 있어 스태그플레이션(고물가 속 경기침체) 우려가 조정될 조짐이 감지되는 것으로 인식되는 분위기가 깔린다.
그러나 시장은 3월 CPI를 두고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에 강력한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4월 치를 반영하지 않은 결과이기 때문에 오는 4월 CPI에서도 3월과 유사한 결과를 받아내긴 어렵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현시점에서 물가나 금리를 판단하는 기준은 CPI 등 주요 경제지표보다 관세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트럼프 대통령은 2일(현지시간) 한국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등 모든 국가에 관세를 차등 부과하는 상호관세 정책을 발표했으나, 뉴욕증시를 포함한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투자심리가 급격히 위축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는 9일 중국을 제외한 국가에 관세 부과를 90일간 유예한다고 발표한 원인이 됐고, 관세 유예는 침체하던 증시가 반등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10일(한국시간) 한국 유가증권시장(코스피)에서도 외인이 무려 10거래일 만에 순매수로 돌아서는 등 하루에만 6.60% 상승한 2445.06에 거래를 마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CPI를 주요 기준으로 삼던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정책에도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금리 동결에 무게를 두고 있는 5월 정례회의를 포함해 25bp 금리 인하 가능성이 높게 관측됐던 6월 회의에서도 25bp 인하를 장담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와서다.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인플레이션이 금리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하면 발표를 앞둔 3월 생산자물가지수(PPI)까지 나와봐야 향후 연준의 방향성이 잡힐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브라이언 콜튼 피치 레이팅스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3월 근원 인플레이션의 둔화는 상품과 서비스 부문을 중심으로 뚜렷하게 나타났기 때문에 연준이 환영할 만한 사안"이라면서도 "기업들이 관세 인상을 앞두고 1월과 2월에 막대한 양의 수입품을 들여왔기 때문에 관세 인상에 따른 소비재 물가 충격은 아직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