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제외한 국가별 상호관세를 90일간 유예했다. 산업계는 '시간을 벌었다'며 일단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예측이 어려운 미국 대통령의 좌충우돌 행보에 대응할 국내 정치 리더십이 앞으로도 최소 2개월가량은 공백이 불가피해 불안감이 여전한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은 9일(현지시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90일간 관세 인상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당초 이날부터 한국 등 70여개국에 상호관세가 부과될 예정이었으나 90일 동안 기본관세 10%만 부과하겠다고 했다.
즉각적인 보복 관세를 시행한 중국은 관세율을 104%에서 125%로 인상한다고 했다. 중국이 미국의 104% 관세에 84% 관세로 보복한 것에 대한 재보복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글로벌 '관세전쟁'의 일차 목표는 중국이라는 점을 노골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관세 정책으로 폭락했던 뉴욕증시는 트럼프 풋(증시 하락을 막는 지원책)으로 급증해 마감했다. 다우존스30산업평균지수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지수, 나스닥 지수는 각각 7.87%, 9.52%, 12.16% 상승 마감했다.
산업계에선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사태 이후 탄핵 정국을 거쳐 대선이 예고된 상황에서 90일은 리더십 공백을 채울 수 있는 값진 시간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우선 반도체와 목재, 구리 등에 관세는 90일 동안 기본관세 10%만 부과될 것으로 보여 안도하는 모양새다. 그러나 지난 3일(현지시간) 부과된 자동차 품목별 25% 관세는 유지된다. 철강과 알루미늄 등에 대한 25% 관세도 유지된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대미 수출액 1·2·3위 품목은 각 자동차와 반도체, 자동차부품이다. 90일 동안 기본관세 10%만 부과하겠다고 밝히기는 했으나, 자동차 관세는 유지되는 만큼 현대자동차·기아, 제너럴모터스(GM) 한국사업장 등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전문가들은 국내 정치 리더십 공백을 채워 본격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낸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뒤 관세 정책으로 으름장을 놓기는 했으나 인플레이션이나 시장 우려 등으로 다소 물러선 것에 의미가 있다고 본다.
한국도 90일간 잘 준비해 국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적기를 놓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 있는 만큼 단기적인 금융 지원과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정부는 여러 대책을 공개한 상태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국무총리는 지난 8일 트럼프 대통령과 28분가량 통화했다. 이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양국 정상이 나눈 첫 대화다. 총리실은 무역 균형을 포함한 경제 협력 분야에서 장관급 협의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지난 9일 국회 현안질의에서 "에너지, 조선 협력을 통해 무역 수지 문제를 다뤄서 큰 틀에서 빅딜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겠다는 큰 방향"이라며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는 유지해야 된다"고 말했다.
다만 대통령 권한대행의 역할은 제한적이거나 소극적이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오는 6월 3일 이후 새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곧바로 미국과 협상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다. 대선 기간에도 미국과의 재협상에 나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다.
미중 관세 전쟁이 격화하는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는 관측도 있다. 양국 무역 비중이 1·2위를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간재를 공급하는 한국 기업은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미중 갈등이 격화하면서 위안화가 절하하면 원화 가치도 연동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된다. 항공업계 등 산업계 피해가 더 커질 수 있다.
이항구 한국자동차연구원 연구위원은 "어쨌든 자동차에는 25% 관세가 부과됐다. 자동차 외에 관세 유예는 협상 여지를 열어놓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자동차와 철강, 배터리 등 주요 수출 품목에 대해 조속히 정부가 협상에 나설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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