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부산=황지향 기자] "런 포! 칠드런!"
6일 오전 부산 벡스코 앞이 함성으로 출렁였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기브앤 레이스(GIVE ‘N RACE)'가 막을 올리며 하늘색 티셔츠를 입은 2만여명의 시민이 광안대교로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시작 1시간 전인 오전 8시부터 행사장 주변은 이미 인산인해였다. 대회 티셔츠를 입은 시민들이 거리를 메웠다. 가족 단위 참가자부터 커플, 친구, 러닝크루까지 다양한 이들이 각자의 색깔을 더한 복장으로 눈길을 끌었다. 색색의 모자와 선글라스, 러닝 벨트 등으로 개성을 드러내며 행사에 임하는 모습이 '같은 티셔츠, 다른 스타일'이었다.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단체 웜업이 이어졌다. 주최 측의 안내에 따라 수천명이 함께 스트레칭을 하고 몸을 풀었다. 스트레칭을 하며 어깨를 나란히 맞댄 수천명의 시민들이 만든 장면은 레이스 전부터 현장을 달궜다.
출발선 앞에는 A부터 F까지 그룹별로 참가자들이 나뉘어 대기했다. 주최 측은 안전을 위해 출발 시점을 그룹별로 시간차를 두고 조정했다. "기브앤! 레이스!", "런 포! 칠드런!"이라는 외침이 끝나자 5초 카운트다운과 함께 힘찬 레이스가 시작됐다.
도심을 벗어나 광안대교로 들어서면서 풍경은 달라졌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와 높이 솟은 아파트,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교량 위를 사람들은 달리고 또 걸었다. 참가자 대부분이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광안대교 중앙에서 사진을 찍거나, 도로 이정표 아래서 인증샷을 남기느라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러닝 크루들의 활약도 눈에 띄었다. '아이구다리야', '비치러닝클럽', '어쩌다' 등 저마다 개성 넘치는 이름의 크루들은 단체복을 맞춰 입고, 깃발을 들고 달리며 레이스에 활력을 더했다. 바다 위를 가로지르는 교량 위에서 그들은 응원과 환호, 에너지를 다른 참가자들에게 불어넣었다.
가족 러너들의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유모차를 밀며 함께 달리는 아빠, 아이를 어깨에 태운 채 걷는 아빠, 손에 손을 꼭 잡고 함께 뛰는 남매까지 세대도, 모습도 제각각이지만 '같이 달린다'는 마음만은 하나였다. 그 틈에서 어린 참가자들의 존재는 더욱 빛났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공주님, 천천히 가도 괜찮아"라는 문구가 적힌 이름표를 등에 단 네 살 아이는 작은 발걸음으로, 이마에 맺힌 땀과 함께 뜻깊은 경주를 완주해 나갔다.
김모(33) 씨 가족은 세 자녀와 남편까지, 총 다섯 식구가 함께 참여한 가족 러너였다. 그는 "아이들이 직접 뛰면서 어린이를 위한 기부에 동참하는 의미가 클 것 같아 큰맘 먹고 나왔다"며 "가족 모두가 마음을 모은 기부라 더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들 가족이 함께 달린 시간은 곧 25만원의 기부로 이어졌다.
광안대교 위를 달리다 보니 평소라면 차량만이 지나는 녹색·분홍색 차량 유도선 위로 수천 개의 발걸음이 덮여 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도시의 일상적 교통 흐름이 멈춘 자리는 참가자들의 열기와 응원으로 물들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로 참가했다는 안모(38) 씨는 "작년에 참가한 이후, 광안대교를 (운전해서) 지날 때마다 그날이 생각났다"며 "부산에 살면서도 교량 위를 직접 뛸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아 올해도 주저 없이 신청했다"고 말했다.
코스 후반부에는 지친 몸을 식힐 수 있는 쿨링존이 마련돼 있었다. 이온음료와 생수가 준비된 테이블 주변으로는 숨을 고르며 목을 축이는 참가자들이 줄을 이었다. 그중 한 참가자가 "살 것 같아요"라고 외치자 주변에서는 웃음이 터졌다.
광안리해수욕장에 마련된 도착 지점은 축제 분위기였다. 브레이브걸스와 다이나믹듀오의 무대가 펼쳐졌고, 곳곳에 설치된 포토존은 참가자들의 발길을 끌었다. 가장 인기 있는 장소는 참가자 이름이 일일이 새겨진 메달 조형물 앞이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자신의 이름을 찾느라 분주한 모습이다.
이날 레이스를 위해 오전 7시부터 정오까지 벡스코 인근과 광안대교, 광안리 해변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가 일시적으로 통제됐다. '기브앤 레이스 교통통제 안내' 현수막이 곳곳에 설치됐고, 사전에 공지된 통제 시간에 따라 시민들도 큰 혼선 없이 협조하는 모습을 보였고 이따금 응원을 보내곤 했다.
기브앤 레이스는 메르세데스-벤츠 사회공헌위원회가 2017년부터 주최해 온 달리기 행사다. 전 참가자의 참가비(5만원) 전액은 사회적 돌봄이 필요한 아동과 청소년을 위한 기부금으로 사용된다. 올해로 누적 참가자 수는 14만5000명, 누적 기부금은 약 76억원에 달한다.
올해 역시 약 10억원의 기부금이 조성됐으며 이는 학대 피해 아동 및 청소년 지원사업에 사용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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