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세종=정다운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2일(현지시각) 우리나라에 25%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해 우리나라 경제에 ‘빨간불’이 켜졌다. 문제는 미국이 주요 우방인 영국, 일본, 유럽연합(EU) 등 보다 관세를 1~15%포인트(p) 더 높게 부과했다는 점이다. 그간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의 방미를 비롯해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른 실 관세율이 사실상 0%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트럼프 행정부에는 통하지 않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무역수지적자에 꽂힌 트럼프…사실관계 달라도 ‘마이웨이’ 관세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일 백악관 경내 로즈가든에서 ‘미국을 다시 부유하게’ 행사를 열고 전 세계 국가를 대상으로 10% 기본관세 및 상호관세(+α)를 부과한다고 밝혔다.
기본관세는 5일부터 10%, 상호관세는 9일부터 15%씩 각각 부과된다. 미국의 이번 조치로 우리나라는 25%(기본관세 10%+상호관세 15%)를 부과받을 예정이다. 기본관세는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된다.
국가별로 보면 △베트남 46% △태국 36% △중국 34% △인도네시아 32% △대만 32% △인도 26% 등으로 우리나라보다는 낮다. 하지만 미국의 우방국인 △일본 24% △EU 20% △이스라엘 17% △영국 10% △호주 10% 등에 비해서는 높은 수준이다.
미국은 우리나라의 대미관세가 50% 수준에 달한다는 주장을 근거로 25% 관세를 부과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2007년 미국과 FTA를 체결해 상품 대부분을 무관세로 교역 중이기 때문에 사실상 관세율은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0%에 가깝다.
이 같은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 앞서 안덕근 산업부 장관을 비롯해 고위급 실무자들이 이미 여러 번 미국을 방문했다. 지난달 31일 미 무역대표부(USTR)가 발간한 ‘2025 국별 무역장벽 보고서(NTE)’에서도 양국 간 관세는 폐지됐다고 언급된 바 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지속해서 한국과 관련해 잘못된 발언을 거듭하고 있다. 사실관계를 알 수는 없지만, 미국의 무역수지적자가 상당히 영향을 끼쳤다는 관측이다.
◆‘황당’ 트럼프식 관세 산식에 전문가들, 美 한국 ‘패싱’ 지적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미국은 지난해 한국과의 교역에서 무역적자액 655억달러 및 수입액 1315억달러를 기록했는데, 655억달러를 다시 1315억달러로 나누면 약 50.2%(백분율 환산)가 나온다. 이날 트럼프는 한국에 25% 관세를 부과했는데, 해당 산식의 결과 값을 단순히 반으로 나눠 도출한 것으로 보인다.
다른 나라에도 같은 산식 적용이 가능하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미국이 4380억달러를 수입하고, 2950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적자액을 수입액으로 나눠 계산하면 67.3%가 나온다. 중국에 부과된 상호관세는 34%다.
△일본 46.2%(24%) △EU 38.9%(20%)△인도 52.3%(26%) 등 나머지도 국가도 맞아떨어지는데, 일부 오차는 비관세장벽 등의 논리를 더 한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가 되는 지점은 우리나라가 대만을 제외하면 미국의 우방으로 분류되는 국가들보다 관세를 1~15%p 더 높게 부과받았다는 점이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미국의 ‘한국 패싱’을 거론한다. 사실상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평가다. 더욱이 대미 수출에서 우리나라는 가격탄력성(가격 상승 시 수요 감소)이 큰 품목들이 많아 향후 수출에 암운이 드리울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한미 FTA도 있는데 우리가 관세를 더 많이 맞았다는 것은 트럼프 정부 입장에서 한국보다 일본이 더 소중하다는 결론 아니겠냐"며 "영국은 10%에 불과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우방 중에서 '중하' 수준의 성적표를 받은 것이고 미국이 한국을 중국보다는 낫지만, 일본보다는 못하다고 보고 있다"며 "한미 FTA 거의 물 건너간 거라고 보는 게 옳을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일본의 경우 관세가 올라가더라도 가격탄력성이 낮아서 수입이 줄어드는 게 덜 하다"며 "우리는 중저가 중심이기 때문에 가격탄련성이 커 가격이 오르면 수출 물량이 확 감소하기 때문에 관세가 부과되면 수출 타격이 심할 것으로 전망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에 수출한 현대차(타 브랜드 대비 저렴)는 미국 중산층 이하에서 주로 사기 때문에 관세 부과로 차량 가격이 상승하면 소비자는 다른 차량을 구매할 수 있단 얘기다.
김수동 산업연구원 글로벌경쟁전략연구 단장은 "절대 수치(관세)도 크고 FTA도 없는 EU와 일본은 우리보다 낮은 관세가 부과됐다"며 "멕시코 캐나다는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에서 준수하는 품목은 무관세를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이 차별당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미국이 제대로 된 정보를 받고서도 이러는 건지 의문"이라며 "최혜국대우(MFN) 관세율을 보더라도 베트남의 경우 10% 수준인데 46%로 늘린 걸 보면, 트럼프가 말한 것처럼 관세 수입 1조달러를 만들기 위해 역산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도 든다"고 설명했다.
또 "미국 시장이 위축되는 것은 당연한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수출 다변화, 한·중·일 FTA 확대 등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이른 시일 내 협의 채널을 가동해 이 같은 데이터가 나온 이유를 조목조목 따져봐야 한다"고 부연했다.
◆"실제 기업 평가 파악해야"…문제는 대미 협상 카드 ‘태부족’
반면, 미국의 관세 부과 이후가 진짜 협상 시작이란 분석도 있다.
조성대 한국무역협회 통상연구실장은 "중국이나 대만보다는 우리 나은 상황이고, 실익을 따진다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정도 되는 상황으로 보여진다"며 "실제 기업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는 더 파악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조치가 FTA에 큰 영향을 주거나 하지는 않으리라고 보여진다"며 "개정될 가능성도 있지만, 굳이 나쁘게 해석할 필요는 없고 차후 외교적인 협상을 통해 관세가 조정될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다만 미국과 추후 협상을 위해서 유전자변형생물체(LMO) 감자,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등이 거론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은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농가의 경작 규모(2021년 기준)는 1.0ha(3025평) 미만이 75만1000가구로 전체 농가의 73.5%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영세농이 압도적으로 많다.
신 교수는 "미국이 농산물에 관심이 많지만, 우리는 열어줄 수 없다"며 "대부분이 영세농이라 국내 농민들이 반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신 교수는 "협상 카드로 정부가 국민연금이나 한국투자공사를 이용해 미국에 금융 투자를 많이 할 수 있다"며 "예컨대 국채를 사주는 방법을 통해 절충해야 한다"며 "일본은 지금 미 국채를 1조 이상 갖고 있는데, 우리는 일본의 10분의 1수준밖에 안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3일 미국 정부의 상호관세 부과에 대응하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민관 합동 미 관세조치 대책회의’를 개최했다. 정부는 우리 기업의 피해 최소화를 위해 고위급(장관·통상교섭본부장 등) 및 실무급의 대미 협의를 추진하고, 업종별 긴급 지원책 마련에도 속도를 낸다는 구상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산 수입품에 대해 25%의 상호관세를 직접 발표한 뒤 백악관의 행정명령 부속서에는 26%의 상호관세율이 명시돼 한국정부는 이를 확인 중이다.
danjung638@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