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선영 기자] 이찬우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이 '금융혁신'을 외치며 고객 신뢰 회복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이찬우 회장은 기존의 방식을 초기화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포부다. 금융감독원에선 농협금융의 내부통제 부실이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바라보는 만큼 이 회장이 농협중앙회와 얽힌 구조에서 벗어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에도 관심이 모인다.
2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찬우 회장은 최근 그룹 계열사 CEO들과 함께 신년 경영전략 회의를 개최하고 금융혁신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시계 제로 상황의 2025년이지만 지속적인 혁신과 회사별 핵심역량 강화를 바탕으로 고객과 시장의 신뢰를 더 공고히 하겠다"며 "기존의 방식을 초기화하고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과 도전정신을 가져 달라"고 했다.
농협금융은 주력 계열사인 농협은행에 수익성을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농협금융의 지난해 순이익(농업지원사업비 부담 전)은 2조8836억원으로 농협은행 비중이 62%에 달한다. 농협금융은 3대 증권사 중 하나인 NH투자증권과 NH농협생명, NH손해보험을 자회사로 보유하고 있으나 비은행 계열사들의 경쟁력 강화가 절실한 시점이다.
특히 지난해 농협은행에서 대형 금융사고가 적발된 만큼 내부통제 강화와 신뢰 회복이 최대 과제로 꼽힌다. 지난 2월 4일 금융감독원이 발표한 지주·은행 주요 검사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농협은행에서는 90건, 649억 규모의 부당대출이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이 회장은 취임사를 통해 "고객에게 신뢰받는 농협금융이 되기 위해 '금융사고 제로화' 초석을 놓아야 한다"며 "내부통제 체계를 재정비하고, 내부통제가 실효성 있게 작동될 수 있도록 점검하고 관리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지난달 13일 개최한 올해 제1차 농협금융지주 내부통제협의회에서도 "소비자로부터의 신뢰회복이 최우선인 만큼 내부통제 체계를 다시 한번 확인해 취약부문 점검을 강화하고, 내부통제 실패에 대해서는 반드시 책임을 물어 책임경영을 확립할 것"을 당부했다.
다만, 금감원에선 농협금융의 내부통제 부실이 지배구조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보고 있다. 금감원은 농협중앙회-금융지주-은행으로 이어지는 지배구조를 집중 점검하며 중앙회의 영향력을 문제 삼기도 했다. 농협금융은 농협중앙회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이같은 구조에선 농협금융 인사와 경영에 농협중앙회가 과도하게 개입할 수 있다. 이에 금융 전문성을 갖춘 최고경영자가 선임되지 못하고 있고 내부통제에 구멍이 생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지배구조 문제로 인한 농협금융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관한 우려도 따른다. 금감원은 "(농협금융의) 단순자기자본비율은 전체 은행지주 가운데 최저 수준"이라며 "그런데도 중장기 자본관리계획 등 고려 없이 매년 대주주에 거액의 배당 등을 지급해 자체 위기대응능력이 약화됐다"고 꼬집었다.
농협금융은 지난해 중앙회에 농업지원사업비 6111억원을 지급했다. 전년(4927억원) 대비 24% 증가한 금액이다. 여기에 농협은행은 전년 대비 2.2%가량 증가한 8900억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이는 농협은행 당기순이익(1조8070억원)의 절반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복현 금감원장 역시 지난달 19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과도한 배당으로 농협금융의 수익성과 건전성에 발생한다면 감독당국과 농협중앙회의 문제가 될 것이다"며 "거위알을 계속 먹느냐, 거위 배를 가르느냐의 문제"라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이 회장이 강호동 농협중앙회장 체제에서 선임됐고 금융감독원 수석부원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중앙회와의 합을 어떻게 맞출지도 관심이다.
다만, 이 회장은 중앙회의 경영·인사 개입에서 '독립성'을 회복해야하는 과제를 안게 됐다. 일례로 자회사 인사 개입으로 지난해 NH투자증권 대표 인선을 놓고 중앙회와 금융지주 간의 충돌이 일어나기도 했다. 금감원은 이같은 관행을 개선하기 위해 농협금융에 계열사 대표 선임 과정을 모두 '서류화'하라고 지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권 관계자는 "농협금융지주 및 은행의 금융 혁신 기조는 업권, 고객을 위해 바람직한 일로 판단된다"면서도 "다만, 구체적인 방식 여부에도 불구,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중앙회-지주 간 경영·인사 문제를 감안할 시 그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농협의 경우 금융혁신의 시작을 금융업에 대한 혁신에 앞서 조직 내 충분한 소통을 통한 혁신이 시작돼야 후속되는 금융혁신이 실질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 가운데 NH농협금융지주는 내부통제 강화와 금융사고·부당행위의 사전예방 및 조기발견을 위해 익명제보 접수채널인 '레드휘슬 헬프라인 시스템'을 도입했다. 기존 농협중앙회에서 통합 운영하던 레드휘슬을 제보 활성화와 비밀유지 강화를 위해 별개의 시스템으로 독립해 구축한 것이다.
레드휘슬 헬프라인 시스템은 제보내용 암호화와 아이피(IP) 추적방지 등의 시스템을 통해 신고자의 익명성이 철저히 보장된다는 게 농협금융측의 설명이다.
이 회장은 "익명제보가 윤리·복무에만 국한되지 않고, 금융사고 예방 및 프로세스 개선을 위해서도 활발하게 운영돼 고객 신뢰를 받는 농협금융그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