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등 국내 반도체 투톱의 주주총회(주총)가 마무리됐다. 올해는 업계 최대 관심사인 고대역폭메모리(HBM)와 관련한 주주들의 질문, 경영진의 메시지가 쏟아졌다. SK하이닉스는 HBM 경쟁력 유지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고, 삼성전자는 초기 대응 실패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전날 경기 이천 본사에서 제77기 정기 주총을 열고 HBM을 포함한 주요 사업 성장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업계 최초로 HBM3E 8단 제품을 공급하기 시작했고, 지난해 말 또 한 번 최초로 HBM3E 12단 제품을 양산, 공급하며 HBM 시장에서 독보적인 성과를 내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3년까지만 해도 '반도체 한파'를 겪으며 어려운 시기를 보냈으나, 지난해 HBM 판매량 증가에 힘입어 사상 최대인 23조4673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현재 HBM 라인을 공격적으로 늘리며 시장 지배력을 강화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날 주총에서도 주주들을 향해 앞으로도 선도적 입지를 굳건히 할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사장은 "올해 HBM 물량은 이미 솔드아웃(완판)됐고, 내년 물량도 올해 상반기 내 고객과의 협의를 마무리해 매출 안전성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이라며 "AI 성장의 출발점인 미국 고객과의 협력을 강화해 AI 시장에서 위상을 높여 나가겠다"고 말했다.
경쟁사들의 추격, 중국 저가형 AI 모델 딥시크 등장 등 여러 우려에 대해서도 "적절히 대응할 수 있다"고 답했다. 곽 사장은 "HBM은 고객 주문을 확보한 뒤 공급한다는 점에서 플레이어 수가 늘어나도 과거처럼 수익성이 악화될 확률은 높지 않다. 기술 경쟁력을 강화해 리더십을 지키겠다"며 "딥시크와 같은 AI 모델 등장으로 신규 스타트업 등의 시장 진입이 가속화되고 양질의 AI 서비스가 늘어나면 그에 기반한 AI칩 수요는 증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SK하이닉스는 6세대인 HBM4 진출의 신호탄을 쐈다. 초고성능 D램 신제품인 HBM4 12단 샘플을 세계 최초로 주요 고객사들에 제공했다. 곽 사장은 HBM4와 관련해서는 "HBM3E와 HBM4를 같은 플랫폼에서 생산하고 있어 유연한 대응이 가능하다"며 "밸런스 문제없이 고객들의 요구에 적기 대응하겠다"고 설명했다.
앞서 지난 19일 열린 삼성전자 주총에서도 화두는 HBM이었다. 물론 경쟁사에 선두 자리를 내준 만큼, 질타 섞인 주주들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에 경영진들은 정면 돌파 의지를 밝혔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을 맡고 있는 전영현 DS부문장(부회장)은 초기 대응에 실패하면서 시장 우위를 빼앗겼고, 이러한 경쟁력 부분이 주가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며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전 부회장은 "빠르면 올해 2분기, 늦어도 하반기부터 HBM3E 12단 제품으로 빠르게 AI D램 시장을 전환시켜 고객 수요에 맞춰 램프업(생산량 확대)시킬 예정"이라며 "HBM 공급량을 지난해 대비 크게 늘려 HBM 시장에서의 입지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주총에서는 삼성전자가 HBM4에 상당한 비중을 두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차세대 AI 제품 경쟁력을 확보해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향후 SK하이닉스가 이를 허용하지 않으려 고삐를 단단히 죄며 시장 내 진검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예상된다. 전 부회장은 "다음 시장은 HBM4, 커스텀 HBM 시장"이라며 "신시장에서는 HBM3E와 같은 과오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하반기 목표로 차질 없이 개발해 양산하겠다"고 강조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SK가 상당히 잘하고 있지만, 삼성도 사활을 걸고 있어 앞으로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이 어떻게 흘러갈지 예상할 수 없다"며 "(HBM4를 통해) 새로운 라운드가 열리는 셈인데, 아무래도 기술력과 시장 변화 대응에 대한 민첩성 등으로 판가름이 나지 않겠나 싶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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