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조소현 기자]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CA협의체 공동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카카오는 정신아 대표 단독 의장 체제로 전환했지만, 김 창업자가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을 유지하며 리더십 혼선 우려도 나온다. 카카오는 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와 비핵심 사업 정리에 속도를 낼 방침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카카오는 전날 CA협의체 개편을 단행했다. 김 창업자가 공동 의장직에서 물러나면서, 정 대표가 단독으로 협의체를 이끌게 됐다. CA협의체는 그룹의 주요 의사결정을 총괄하는 조직으로, 기존에는 김 창업자와 정 대표가 공동으로 의사결정을 맡아왔다.
지난 2023년 11월부터 한시적으로 운영해 온 경영쇄신위원회 활동도 종료됐다. 카카오는 쇄신 방향과 시스템이 구체화된 만큼, 향후 과제는 주요 계열사 CEO들이 참여하는 전략위원회, 책임경영위원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김 창업자가 CA협의체 공동 의장직에서 물러난 이유는 암 치료에 집중하기 위해서다. 카카오 관계자는 "김 창업자가 최근 방광암 초기 진단을 받았다"며 "당분간 수술과 입원 등 치료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김 창업자의 부재를 '위기'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창업자의 영향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의사결정을 더욱 강화할 기회가 될 수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카카오가 더 이상 김 창업자에게 의존해서는 안 된다"며 "그가 카카오 성장에 기여한 것은 사실이지만, 기업의 미래를 위해서는 지나치게 얽매이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경영의 디커플링(Decoupling)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다만 김 창업자가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 직책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경영 체제의 모호성이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창업자의 역할이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전문경영인 체제의 독립성이 약화될 수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김 창업자의 사임이) 아주 새롭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며 "떠난 것이 처음이 아니다. 나갔다 들어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이번에도 물러났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영향력을 내려놓은 것인지, 아니면 여전히 행사하고 있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모호한 상황은 시장의 혼란을 초래하는 만큼, 카카오가 더욱 명확한 메시지를 제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애매한 태도는 카카오의 향후 전략과 미래 설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김 창업자가 전면에 나설 것이라면 확실히 나서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전문경영인 체제가 온전히 자리 잡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장에는 회사의 방향성을 자신감 있게 제시할 수 있는 확실한 리더십이 필요한데, 현재 구조가 '김범수의 아바타'가 운영하는 모습으로 비쳐서는 안 된다"고 덧붙였다.
김 창업자는 지난 2022년 3월 "글로벌 시장과 미래에 집중하겠다"며 카카오 이사회 의장직에서 한 차례 물러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2023년 11월 카카오가 위기를 벗어나지 못하자 다시 경영 전면에 복귀했다. 당시 그는 "창업자이자 대주주로서 창업 당시의 모습으로 돌아가 위기 극복을 위해 앞장서겠다"며, 경영쇄신위원회를 출범하고 준법과신뢰위원회를 신설하는 등 조직 쇄신에 나섰다.
그러나 사법리스크가 불거지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김 창업자는 SM엔터테인먼트 인수 과정에서 경쟁사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주가를 공개매수가보다 높게 고정하는 방식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지난해 7월 구속 기소됐다. 현재는 불구속 상태에서 1심 재판을 받고 있다.
설상가상 이번 건강 문제로 인해 재판 일정에도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사법리스크가 장기화될 경우, 카카오의 거버넌스 불확실성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김 창업자가 현재 시세조종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만큼, 윤리적인 경영자의 이미지를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기업의 리스크 요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그동안 성실히 재판에 출석해 온 김 창업자는 지난달 28일 열린 9차 공판에 불출석했다. 이날 오후 예정된 재판에도 건강상의 이유로 참석이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카카오는 치열해지는 AI 시장에서 성과를 내야 하는 부담도 안고 있다. 네이버는 이해진 창업자가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해 AI 사업을 직접 이끌 예정인 반면, 카카오는 오픈AI와 협업을 발표했으나 구체적인 개발·활용 계획이 불명확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카카오는 우선 AI 에이전트 '카나나' 출시에 집중할 계획이다. 지난달 조직 개편을 통해 AI 서비스·개발을 각각 담당해 온 '카나나엑스'와 '카나나알파'를 통합해 단일 조직 '카나나'로 개편했다.
동시에, 비핵심 사업 정리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카카오는 포털 '다음' 서비스를 담당하는 사내독립기업(CIC) 분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에서는 카카오가 포털 사업을 단계적으로 축소하거나, 장기적으로는 매각을 검토할 가능성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카카오 관계자는 "콘텐츠CIC의 재도약을 위해 분사를 준비하고 있다"며 "완전한 별도 법인 독립으로 독립성을 확보할 예정이다.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환경과 빠르고 독자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갖춰 서비스 경쟁력을 강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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