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광폭 행보에 한국 에너지 업계의 희비가 엇갈리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첫날부터 반(反) 풍력 정책을 쏟아내는가 하면 액화천연가스(LNG)에 양국 협력을 요청하고 적극적인 친원전 정책을 펼치면서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는 알래스카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한국 기업의 참여를 압박하고, 풍력 배척 정책으로 국내 기업의 미국 해상풍력 계약을 좌초시켰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일(현지시간) 집권 2기 첫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일본, 한국 등이 (알래스카의 천연가스 파이프라인 사업에서) 우리의 파트너가 되길 원하고 있으며, 각각 수조달러를 투자할 것"이라고 말했다.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은 약 1300㎞ 길이에 달하는 가스관을 통해 알래스카 최북단에서 생산한 천연가스를 남부 해안가로 나르고, 이를 액화해 2029년부턴 아시아 등지로 수출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약 400억(약 58조원) 달러의 투자금이 필요한, 미국 LNG 개발 역사상 최대 규모 사업으로 평가된다. 주요 LNG 수입국인 한·일이 가스전 개발에 직접 참여하고 수입까지 하도록 하는 게 트럼프 정부의 구상이다. 마이크 던리비 알래스카 주지사가 한국의 알래스카 LNG 개발 사업 투자를 공식 요청하고 관련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오는 25~26일 방한을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정부는 에너지 도입선 다변화 측면에서 긍정적으로 본다. 안덕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에너지 공급선 다변화와 수급 안정 측면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지난해 한국의 LNG 수입량 4632만톤(t) 중 호주산이 24%로 가장 많았고, 카타르(19%)와 말레이시아(13%)가 뒤를 이었다. 미국산은 12%로 4위를 차지했다.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연 2000만톤(t) 규모의 LNG가 생산된다. 이는 우리나라 LNG 수입량의 약 2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리 장기 계약을 맺을 경우 상당한 규모의 가스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프로젝트에 한국 기업들이 참여한다면 또 다른 수출 기회로 이어질 수 있다. 북극해 가스전 개발에 필요한 쇄빙선 건조에서부터 대량의 철강재가 필요한 송유관 건설까지 한국 기업의 참여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정부의 친원전 정책도 국내 업계에 호재라는 분석이 나온다.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크기를 100분의1 수준으로 줄인 '미니 원전'이다. 크기가 작고 필요한 전력에 맞게 소규모로 제작해 블록 연결 방식으로 설치할 수 있어 효율성이 뛰어나고 안정적인 에너지 생산이 가능하다. 전력 수요가 큰 개별 기업 단위나 산업 단지를 위한 발전소로 각광받고 있다.
특히 빅테크 기업이 몰린 미국은 인공지능(AI) 개발 및 산업화에 따른 데이터 센터 확대로 전력 공급이 부족한 상황이다. 아마존, 구글, 메타 등이 저마다 SMR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다. 취임 첫해부터 SMR 지원 정책을 폈던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2기 들어서도 적극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14일 행정명령을 통해 '국가에너지지배위원회'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원전 재개와 SMR 상업 운전으로 미국의 에너지 주도권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SMR 확대 정책은 원전 건설 강국인 한국에는 기회가 되고 있다. 미국은 1980년 중반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 이후 지금까지 신규 원전을 건설한 적이 없다. 반면 한국은 1978년 고리 원전을 시작으로 최근 신한울 1∼4호기를 짓는 등 풍부한 원전 공급망과 건설 기술을 보유하고 다.
그 결과 HD현대를 비롯해 현대건설, SK그룹, 두산에너빌리티, 삼성물산 등 국내 기업은 미국의 SMR 업체와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정기선 HD현대 수석부회장은 최근 미국 SMR 기업 테라파워 창립자 빌 게이츠와 만나 SMR 개발 및 공급망 구축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HD현대중공업은 테라파워가 개발한 SMR의 원자로 주기기를 공급하고 최적화된 제조 방안을 도출하기로 했다. 두산에너빌리티도 SMR 파운드리(위탁생산 전문기업) 업체를 목표로 미국 3대 SMR 기업인 엑스에너지, 테라파워, 뉴스케일파워와 모두 협력 체계를 구축하고 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반재생에너지 기조로 풍력 사업을 하는 국내 기업은 비상이다. 해상풍력타워를 제조하는 국내 업체 CS윈드는 지난해 11월 수주했던 미국 해상풍력 하부구조물 공급계약이 해지됐다고 4일 공시했다. CS윈드는 "지난달 28일 계약 상대방에게 공급계약 해지 통보서를 받았고, 즉시 계약종료 효력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업계에선 이번 계약 해지가 트럼프 대통령의 풍력에 대한 반감으로 미국 풍력 산업이 멈춰선 여파로 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때부터 해상 풍력 발전을 강하게 비판하며 "첫날부터 끝내겠다"고 공언했다. 취임 첫날인 지난 1월 20일에는 손가락으로 풍력 터빈이 도는 모습을 흉내 내며 "크고 흉한(ugly) 풍력 터빈이 동네를 망친다"며 "우리는 풍력발전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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