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저출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 민간 차원의 노력이 절실하다는 데 공감한 국내 주요 기업들이 출산 지원 제도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출산 장려금 지급은 물론, 휴가 제도를 개선하거나 다자녀 직원을 정년 후 재고용하는 방안도 나왔다.
28일 재계에 따르면 출산 장려 제도와 관련해 현재 가장 주목받는 기업은 부영그룹이다. 2021년부터 직원 자녀 1인당 1억원씩 지급하는 등 파격적인 수준의 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초 열린 시무식에서도 자녀를 출산한 직원 28명에게 출산 장려금 1억원을 지급했다. 지금까지 지급한 출산 장려금은 총 98억원에 달한다.
이러한 파격적인 지원은 이중근 회장의 강력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 회장은 이러한 노력을 인정받아 최근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이 회장은 "저출생 문제가 지속된다면 20년 후 경제 생산 인구 수 감소, 국방 인력 절대 부족 등 국가 존립의 위기를 겪게 될 것으로 보고, 그 해결책으로 출산 장려금을 지급하고 있다"며 "부영이 마중물이 돼 국채 보상 운동과 금 모으기 캠페인처럼 많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출산을 지원하는 나비효과로 번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바람대로 기업 경영진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한 출산·육아 지원책이 최근 속속 등장하고 있다. 게임사 크래프톤은 지난 27일 임직원 자녀 1명당 총 1억원에 달하는 출산 장려금 및 육아 지원금을 지원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올해 1월 1일 이후 출산한 직원에게 출산 장려금 6000만원을 지급하고, 자녀가 만 8세가 될 때까지 매년 500만원씩 지속해서 지원해 4000만원의 육아 지원금을 추가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크래프톤은 육아휴직 기간을 최대 2년까지 늘리고, 자녀 돌봄 재택근무 제도도 신설했다.
두산그룹도 지난 23일 출산·육아 지원 제도를 대폭 강화한다고 발표했다. 6개월 이상 휴직자의 소속 팀원에게 1인당 최대 50만원을 지급하는 제도인 '육아휴직 서포터즈 지원금'을 신설해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육아휴직을 활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고, 첫째 300만원, 둘째 500만원, 셋째 이상 1000만원 등 출산 경조금을 상향했다. 또 육아휴직 시 소득 감소로 인한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법정 육아휴직 첫 1개월에 대해서는 기본급에서 정부지원금을 제외한 차액만큼 회사에서 지원하기로 했다.
한화그룹 기계 부문(로보틱스·모멘텀·비전·세미텍) 4개사는 지난 27일 출산 가정에 '육아 동행 지원금' 1000만원을 지급한다고 밝혔다. '육아 동행 지원금'은 직원들의 일·가정 양립을 돕기 위해 한화그룹 일부 계열사가 최근 신설한 제도인데, 이를 기계 부문도 도입하기로 한 것이다. 기계 부문의 '육아 동행 지원금' 제도는 다음 달부터 시행되며, 출산 횟수에 상관없이 혜택이 주어진다. 쌍둥이 등 다태아 가정의 경우 신생아 수에 맞춰 지급한다.
이러한 지원 제도 확대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삼남 김동선 미래비전총괄 부사장이 주도하고 있다. 기존 제도 시행 회사에서 효과가 있다는 것을 확인한 김 부사장이 기계 부문까지 지원 확대를 주문했다. 김 부사장은 "출산과 육아를 앞둔 직원들의 여러 고민을 들으면서 지원 필요성을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됐다"며 "형식적 동행이 아닌 직원들의 실질적 어려움을 회사가 함께 헤쳐나갈 수 있도록 앞으로도 다양한 직원 동행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다자녀 직원에 대한 '정년 후 재고용' 방안을 제도화하려는 기업도 있다. 해당 기업은 삼성전자로, 최근 삼성전자 노사는 임금·단체협약의 잠정 합의안을 도출했다고 발표하면서 3자녀 이상 직원 정년 후 재고용도 제도화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국내 주요 기업 중 이러한 제도를 추진하는 것은 삼성전자가 처음이다. 삼성이 제도 신설을 본격화하면 다른 기업들도 해당 방안 도입에 대해 고민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외에도 다양한 기업이 지난해부터 직원들의 출산·육아를 돕기 위한 제도를 운영 중이다. LG전자는 육아기 근무 시간 단축 제도를, 롯데그룹은 근무 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난임 휴직, 차량 지원 등을 시행한다. SK도 육아 휴직 자동 전환제 등을 운영하고 있다.
경제단체 차원에서도 저출산 극복 동참 메시지가 지속해서 나오고 있다. 최태원 회장의 제안으로 만들어진 대한상의 신기업가정신협의회는 저출산, 고령화 등 인구 구조 변화 문제에 대한 해결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경총은 금융계, 학계, 방송계, 종교계와 함께 저출생 극복 추진 본부를 설립해 지난 21일 첫 대표단 회의를 열었다. 추진 본부는 "지난해 합계 출산율 반등(0.72명→0.75명)과 같은 반전의 긍정적 흐름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생명·가족·공동체의 소중함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활동을 통해 민간의 공동 협력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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