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캐나다산 원유에 대한 관세 부과를 예고하면서 실제로 관세 조치가 발효되면 국내 정유회사들 입장에서는 호재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그동안 원유 대부분을 미국 정유 업체로 수출해왔던 캐나다가 관세 회피 차원에서 한국 등 아시아권으로 수출을 늘리면 국내 업체들은 생산 원가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25일 업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다음달부터 캐나다산 원유에 관세를 부과하기로 하면서 일부 정유사들은 원유 도입에 따른 경제성 검토에 나섰다.
정유사들은 관세 품목에 원유가 포함된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앞으로 캐나다산 원유에는 10%, 멕시코산 원유에는 25% 관세가 부과된다.
이 제품들은 '초중질유'로 미국으로 수출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실제 미국이 수입하는 전체 원유에서 캐나다산은 61%, 멕시코산은 7%를 차지한다.
미국 정유사 입장에서는 자국 원유 생산의 70% 이상이 경질유인 탓에 캐나다산 원유와 같은 중질유가 필수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캐나다산 원유에 대한 관세 인상은 미국 내 석유 수급에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미국 관세를 피해 캐나다산 원유 일부가 아시아로 넘어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아시아 역내에 캐나다산 원유가 공급되면 국내 정유사들은 보다 저렴한 원유를 도입해 수익을 개선할 수 있다. 캐나다산 원유는 중동산과 비교해 배럴당 15달러(약 2만1600원) 가량 저렴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재성 하나증권 연구원은 "지난해 5월 TMX(Trans Mountain Expansion Project) 파이프라인 완공 이후 미국과 아시아를 향한 수출 증가로 캐나다의 해상 원유 수출량은 지난해보다 65% 증가한 54만 배럴을 기록했다"며 "라틴아메리카·중동산 중질유는 캐나다 원유와 경쟁해야 하는 만큼 아시아 업체의 원가 수혜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분석했다.
특히 캐나다산 원유를 정제할 수 있는 시설을 갖춘 주요 국가로 한국이 꼽힌다. 정제 규모가 한국 대비 작은 일본은 대규모 거래에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다.
일례로 HD현대오일뱅크는 초중질유를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중질유분해시설(RFCC)과 고도화 비율이 높은 정제시설을 보유하고 있다. 캐나다산 원유가 아시아 시장에 대량 유입될 경우 원유 조달비용 절감 효과를 누릴 수 있다.
실제로 HD현대오일뱅크는 지난 6일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캐나다산 원유 관세 인상 영향을 두고 "국내 정유기업에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캐나다 원유는 일부 미국 정유 기업에서 쓰이고 있었는데 관세 부과로 이들 기업의 가동률이 하락하고 제품 시황의 강세가 예상된다"며 "미국으로 넘어가지 못한 캐나다산 중질유가 시장에 많이 공급돼서 증질유 원유를 원하는 국내 기업들에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SK이노베이션도 같은 날 진행된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2025년 1분기 미국산 도입 비율은 약 25% 수준"이라며 "기회에 따라 캐나다산 원유도 도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미국산 원유와 캐나다산 원유의 가격 차에 따라 경제성을 지속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대주주 국적에 따라 원유 수입처 다변화에 미묘한 온도차를 보이는 정유사도 있다. GS칼텍스 관계자는 캐나다산 원유 수입을 두고 "여러 대외 변동성 및 경제성을 고려해 다양한 가능성을 검토 진행하고 있다"며 말을 아꼈다. GS칼텍스는 미국 쉐브론과 한국 GS에너지가 각각 50%씩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한국 토종기업이고 HD현대오일뱅크의 지분 74%는 지주사 HD현대가 들고 있다.
zz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