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최의종 기자]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현대자동차·기아가 연일 주주 친화 메시지를 내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고려해도 저평가돼 있다고 알려진 현대차·기아가 글로벌 불확실성 극복과 인공지능(AI) 시대에 적절한 대응이 관건이라는 해석이 있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1일 주주서한을 통해 총주주환원율(TES)을 35% 이상으로 유지하고, 1주당 최소 배당금 1만원 도입과 연계한 2500원 분기 배당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장재훈 현대차그룹 부회장(전 현대차 사장)이 지난해 8월 2024 CEO(최고경영자) 인베스터 데이에서 공개한 주주환원 정책과 같은 규모다. 기아도 TSR을 35% 이상으로 확대한다고 밝힌 바 있다. 기아는 올해 초 CEO 인베스터 데이를 열 예정이다.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둔 현대차·기아가 연일 주주 친화 메시지를 내고 있으나 좀처럼 시장의 관심을 못 받고 있다. 현대차·기아 주가수익비율(PER)과 주가순자산비율(PBR)을 보더라도 저평가돼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PER은 시가총액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지표다. 10 이상이면 고평가, 이하면 저평가됐다고 본다. 현대차 PER은 4.47, 기아 PER은 4.24다. PBR은 시가총액을 순자산으로 나눈 지표다. 1보다 높으면 고평가, 낮으면 저평가로 본다. 현대차 PBR은 0.58, 기아 PBR은 0.80이다.
업계에서는 지난해 호실적에도 트럼프 2기 불확실성 등을 대표적인 저평가 기조 유지 원인으로 본다. 트럼프 대통령은 수입산 자동차에 25% 관세를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글로벌 신용평가사 S&P는 관세 20%가 부과되면 현대차·기아 영업이익이 19%씩 줄어들 것으로 봤다.
올해부터 임기를 시작한 현대차 첫 외국인 CEO 무뇨스 사장은 "새로운 미국 행정부와 긴밀히 협력해 대규모 투자, 일자리 창출, 경제적 기여를 강조하기 위한 대화를 지속하고 있다"라며 "아마존과 웨이모, 제너럴 모터스(GM) 등과 전략적 협력도 확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차 앨라배마공장과 기아 조지아 공장에 이어 지난해 말부터 가동한 조지아 소재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운영하고 있다. 현대차는 GM과 지난해 9월 포괄적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도 체결했다. 미국 공장 생산 시설을 공유할 가능성이 있다.
AI 시대에 접어들면서 현대차그룹 자율주행 기술 경쟁력 등이 부각될지도 변수다.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테슬라는 FSD(완전자율주행) 기능에 회의론이 수면 위로 오를 때마다 주가가 흔들린 바 있다. 반면 글로벌 전기차 시장 다크호스 중국 BYD는 딥시크와 손잡겠다고 했다.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 전략으로 전기차 시장에서 입지를 굳힌 현대차·기아가 자율주행 기술에서 다른 글로벌 업체에 밀리면 시장 평가는 현재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있다. 뚜렷한 기술을 선보이는 업체가 없으나 혜성처럼 등장하면 현대차·기아가 고전을 면치 못할 전망이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도 이런 상황을 인식하고 있다. 지난해 말 단행한 인사가 트럼프 2기 대응이 배경이었다면, 다음 달 정기 주주총회를 통한 이사회 정비는 ICT(정보통신기술) 경쟁력 강화가 배경으로 꼽힌다. 기아는 이사회 구성에 큰 변화가 없으나 현대차는 변화가 있다.
현대차는 다음 달 20일 정기 주총에서 진은숙 ICT담당 부사장을 사내이사로 신규 선임한다. NHN 총괄이사 출신인 진 부사장은 2021년 ICT본부장으로 합류했다. 진 부사장이 그룹에 합류한 뒤 인사철마다 현대오토에버 수장으로 하마평에 오르기도 했다.
불확실성과 AI 시대 대비 등 직면한 숙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도 미래 모빌리티 투자도 게을리하지 않는 모양새다. 현대차는 정기주총에서 사업 목적에 '수소사업과 기타 관련 사업'을 추가할 예정이다. 퍼스트 무버(선도자)가 되겠다는 야망을 숨기지 않는 셈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관세라는 불확실성이 있기는 하지만 대한민국만의, 현대차·기아만의 저평가 요인으로 보기는 어렵다"며 "판매량이나 포트폴리오 등은 잘하고 있지만, 자율주행이나 로봇 분야에서 수준이 어느 정도 있는지 시장에 보여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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