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허주열 기자] 지난달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끄는 행정부가 출범한 이후 K-조선업과 해양 방산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 "미국의 조선업은 한국의 도움과 협력을 필요로 하고 있다. 한국의 세계적인 군함과 선박 건조 능력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선박 수출뿐만 아니라 보수·수리·정비 분야에 있어서도 긴밀하게 한국과 협력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및 상호 방위조약을 체결한 인도태평양 국가들을 대상으로 미 해군 함정을 건조하고 부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해군 준비태세 보장법'과 '해안경비대 준비태세 보장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은 향후 30년간 총 300척, 1600조원 규모의 전투함 건조 사업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 상원에서 발의된 법안이 통과될 경우 우리의 함정 해외 수출 시장은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에 맞춰 방위사업의 컨트롤타워인 방위사업청은 군·관·민의 협력을 기반으로 하는 '원팀' 구축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주요 함정을 건조하는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에 협력과 화합을 촉구하고 있지만, 실효성은 없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 해양방산을 이끄는 양사의 속사정은 복잡하다. 해외 사업에서는 대체적으로 '원팀'에 동의하며 즉각적으로 수출 사업에 착수할 준비가 돼 있지만, 7조8000억원이 투입되는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사업을 포함한 국내 사업에서는 이견이 크다.
이 가운데 결정권을 쥔 방사청은 두 대기업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면서, 컨트롤타워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은 해외 함정 건조 사업을 위한 협력에 힘쓰고 있지만, KDDX의 상세 설계 및 초도함 건조 사업 추진을 위한 사업자 선정과 추진 방식에 대한 갈등은 진행형이다. 방사청은 지난해 9월 두 회사에 공동개발 및 분할건조 방안을 제시했으나, 조율은 이뤄지지 않았다.
이어 이달 초 산업통상자원부가 두 업체 모두 복수로 이 사업 추진을 위한 방산업체로 지정했지만, 방사청은 아직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KDDX 사업은 2030년까지 7조8000억원을 투입해 6000t급 최신형 이지스함 6척을 확보하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2012년 개념설계, 2023년 기본설계, 2024년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 선정, 2029년 건조 및 시험평가 완료 등을 거쳐 2030년 해군에 인도하는 로드맵을 세웠다. 하지만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업체 선정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고, 방사청은 늦어도 오는 4월 내에는 최종 사업자를 선정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방사청이 계획에 따른 일정대로 지난해 7월 결정했어야 할 상세설계 및 선도함 건조 사업자 선정을 미루면서 2030년 해군 인도를 목표로 한 KDDX 선도함은 제때 전력화가 사실상 어려워진 상황이다.
현재 방산업계는 KDDX 사업자 선정이 조만간 이뤄질 것으로 알려지며, 선정 방식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한쪽에선 방사청이 관례대로 기본설계 업체와 수의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고, 다른 쪽에선 사안이 사안인 만큼 기본설계 업체와 개념설계 업체가 공동개발을 진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와 관련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KDDX 사업 추진 방식이 수의계약으로 결정된다면 결국 한화오션의 일방적인 양보를 전제로 한 구조가 될 것"이라며 "여론이 비교적 잠잠해진 틈을 타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려는 의도로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어 "방사청은 방위력 개선 사업을 수행하는 주체로서, KDDX 사업 추진 방식을 합리적으로 결정하고 HD현대중공업과 한화오션이 모두 수긍할 수 있는 최적의 방안을 마련해 우리 방산 산업의 기초를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다른 방산업계 관계자는 "공동 설계를 하려면 KDDX 사업추진기본전략을 수립할 2018년 협약을 맺고 사업을 했어야 했다"며 "실제 설계와 함 건조를 눈 앞에 두고 공동설계를 하자는 것은 현실성이 결여된 방안"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 관계자는 "KDDX 사업을 둘러싼 두 업체 간 법적공방이 지난해 마무리됐고, 전 방사청장의 특혜 의혹이 무혐의로 결론이 났기 때문에 사업 추진에 모든 문제가 해소된 상황"이라며 "사업이 일 년가량 지연된만큼 조속히 진행될 수 있는 방향으로 사업자 선정이 이루어져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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