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정부가 중국산 철강 후판에 대해 최대 38%의 반덤핑 관세를 잠정 부과하기로 결정하면서 국내 철강업계는 한숨을 돌린 반면 조선·건설업계는 원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최종 결정이 남아 있는 만큼 관련 업계는 시장 변동성을 주시하며 정부의 최종 조치에 따른 대응 전략 마련에 분주한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는 20일 중국산 후판의 덤핑 행위로 인해 국내 산업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판단을 내리고 27.91~38.02%의 예비 반덤핑 관세를 부과해달라고 기재부에 건의하기로 결정했다. 기재부가 이를 받아들이면 1~2개월 내로 관세가 부과될 가능성이 높다.
후판은 두께 6㎜ 이상의 철강 제품으로 선박 건조를 비롯해 교량, 플랜트, 해양 구조물, 송유관 등 다양한 산업에서 사용된다. 국내 철강업계는 그동안 중국산 후판이 저가 공세를 펼치면서 시장 질서를 왜곡시키고 수익성을 악화시켰다고 지속적으로 문제를 제기해왔다.
특히 국내 대표 철강사인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저가 중국산 제품의 대거 유입이 이루어진 시기에 실적 악화를 겪었다. 포스코 모회사 포스코홀딩스의 영업이익은 2021년 9조2381억원에서 2023년 2조1700억원으로 줄었다. 현대제철은 같은 기간 2조4475억원에서 3144억원으로 급감했다. 중국산 후판 수입량이 2021년 33만 톤에서 2023년 125만 톤으로 약 4배 증가한 점 등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에 국내 철강업계는 이번 조치가 시장 정상화의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철강사 관계자는 "세계적으로 보호무역주의가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철강업계는 이에 대한 별다른 장치 없이 경쟁을 이어왔다"며 "중국산 후판 제품의 유입이 더욱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꼭 필요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중국산 저가 공세로 국내 업체들도 가격 경쟁에 내몰렸던 만큼, 반덤핑 관세 부과로 후판 시장의 질서가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조선업계는 후판 가격 인상에 따른 부담을 우려하며 대응책 마련에 나섰다. 선박 제조 원가에서 후판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에 달하는 만큼, 반덤핑 관세 부과는 조선사들의 원가 압박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크다. 특히 대형 조선사들은 중국산 후판 의존도가 20% 수준으로 상대적으로 낮지만 중소 조선사들은 50~70%의 높은 의존도를 보이고 있어 더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조선업계는 원가 상승을 최소화할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다양한 대응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건설업계 역시 후판 가격 상승으로 인한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공사비 절감을 위해 중국산 후판을 선택하는 현장이 많았다. 반덤핑 관세 부과로 후판 가격이 오르면 공사비 상승으로 직결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다만 현장과 기업 규모에 따라 그 영향이 차별적으로 나타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관계자는 "건설업은 원자재 가격 변동에 대비해 미리 후판을 확보하는 전략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단기적인 충격은 제한적일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미리 자재를 확보하지 못한 현장이나 신규 공사 수주에서는 후판 가격 인상이 원가 부담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형 건설사들은 대량 구매를 통해 협상력을 발휘할 수 있어 원가 상승을 일부 상쇄할 수 있지만 중소형 건설사는 상대적으로 협상력이 부족해 가격 상승 압박을 더욱 직접적으로 받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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