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금융지주가 지난해 역대급 실적을 거뒀다. 이들 모두 주력 계열사인 은행 부문에선 고른 성적을 냈으나 비은행 부문이 실적을 판가름하는 열쇠가 됐다. 금리 인하와 정부 규제 등으로 은행만으로 호실적을 내긴 한계가 있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는 평가도 나온다. 각 지주가 비은행 포트폴리오 확대를 위해 애쓰는 가운데, 지난해 효자 노릇을 한 계열사와 아픈 손가락으로 남은 계열사는 어디인지 조명해 본다. <편집자 주>
[더팩트ㅣ이선영 기자] NH농협금융지주가 지난해 최대 실적을 거뒀다. 특히 은행의 내실성장과 비은행 계열사의 활약이 돋보인다. NH농협생명, NH투자증권 등 계열사들이 호실적을 내면서 '효자' 노릇을 했다. 비은행 계열사의 순이익 기여도 역시 확대됐다. 그러나 4대 금융지주와 격차가 크게 벌어져 아쉬움이 남는다. 배당·농지비로 중앙회에 순익 절반을 지급하고 있어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도 따른다.
21일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지난해 연간 2조4537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는 전년 대비 11.4% 증가한 수치다. 농협중앙회에 납부하는 농업지원사업비를 제외하면 2조8836억원 수준이다. 그룹 출범 이후 최대 실적을 써냈다.
은행의 내실 성장이 호실적을 이끌었다. 선제적으로 대규모 충당금을 적립한 농협은행은 지난해 대손비용이 크게 하락하며 순익 방어에 성공했다. 농협금융의 지난해 대손비용은 1조2248억원으로 전년(2조1018억원) 대비 41.7% 급감했다.
그러나 농협금융은 주요 금융지주 가운데 순이익 규모 꼴찌 자리를 유지했다. 순익 5조782억원을 올린 KB금융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이어 신한금융(4조5175억원), 하나금융(3조7388억원) 순이다. 경쟁사로 꼽히는 우리금융(3조860억원)에도 뒤처졌다. 농협금융과 우리금융의 순이익 차이는 6323억원이다.
농협금융의 자산건전성 지표 악화는 여전한 고민거리다. 지난해 농협금융의 고정이하여신비율은 0.68%로 전년(0.57%) 대비 0.11%포인트 상승했다.
주요 자회사인 농협은행의 수익성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 역시 뼈아프다. 농협은행의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1조8070억원으로 전년 대비 1.5% 성장했으나 2조원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다. 5대은행(신한·하나·KB국민·우리·NH농협) 가운데 당기순이익 2조원을 넘지 못한 곳은 농협은행이 유일하다.
농협은행은 지난해 순이자마진(NIM)이 감소하며 은행의 수익성이 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농협은행의 지난해 순이자마진(NIM)은 1.88%로, 전년 대비 0.08%포인트 하락했다. 카드를 제외한 NIM은 이보다 더 낮은 1.74%를 기록했다.
◆ 증권·생명 '효자 계열사'…비은행 비중 30%대 회복
농협금융에 따르면 지난해 비은행 부문의 순이익 기여도는 31.9%로 집계됐다. 농협금융의 비은행 부문 순이익 기여도는 2021년 34.6%까지 상승했으나 2022년과 2023년에는 20%대에 그친 바 있다.
NH투자증권 NH농협생명 등 계열사들이 호실적을 내면서 '효자' 노릇을 톡톡히 했다.
NH투자증권 순이익은 6867억원으로, 전년 대비 24.2% 증가했다.
NH투자증권이 전체 순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23년 12.2%에서 2024년 14.1%로 늘었다. 2024년 기준 NH농협은행 다음으로 기여도가 높다.
NH농협생명 순이익은 같은 기간 35.4% 증가한 2461억원을 기록했다. 비은행 계열사 가운데 NH투자증권 다음으로 순이익 규모가 크다.
지난해 농협금융 순이익에서 보험 부문 비중은 13.2%로 전년(13.3%)과 비슷한 수준이다.
NH농협손해보험의 순이익이 뒷걸음질 치며 NH농협생명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NH농협손해보험은 8.6% 감소한 1036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NH농협캐피탈의 지난해 순이익은 1.1% 증가한 864억원에 머물렀다.
◆ 배당·농지비로 순익 절반 '뚝'…성장 걸림돌 지적도
금융권에 따르면 농협금융은 지난해 실적을 기준으로 중앙회에 농업지원사원비(농지비) 6111억원을 지급했다. 이는 전년 대비 24% 늘어난 금액이다. 농지비는 농협법에 따라 농협금융이 농협중앙회에 매년 납부하는 분담금으로, 농협 본연의 목적사업인 농업인·농촌 지원사업의 재원으로 사용된다. 농협금융을 비롯한 계열사들은 중앙회에 매년 매출액 혹은 영업수익의 2.5%가량을 농지비로 지급한다.
아울러 농협은행은 지난해 실적 기준 8900억원의 현금배당을 결정했다. 배당률은 37.33%에 달한다. 농협은행의 배당은 농협금융을 통해 대주주인 중앙회로 들어간다. 농협은행의 배당 규모는 △2021년 7400억원 △2022년 8650억원 △2023년 8700억원으로 해마다 증가하고 있다. 농협금융이 농협중앙회에 지급하는 농지비와 배당금을 합하면 총 1조5011억원에 달한다. 농지비 변수를 제외한다면 농협금융은 우리금융과의 4위 경쟁을 수월하게 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농협금융 관계자는 배당·농지비가 성장에 걸림돌이 된다는 지적과 관련해 "농협금융의 배당과 농지비는 국내 농업발전의 중요한 기반이 되도록 농업인 지원에 사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가운데 농협금융은 역대 최대 실적 기록을 냈으나 은행 중심의 성장이 한계에 부딪힌 만큼 수익성 회복이 시급한 과제로 꼽힌다. 이에 농협금융은 비은행 부문의 기여도를 올리며 계열사의 성장에 힘쓸 것으로 보인다.
이찬우 농협금융 회장은 이를 의식한 듯 지난 2월 취임사에서 "이자수익 등 전통적인 수익원을 통한 성장이 점차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며 "계열사별로 핵심 역량을 강화해 농협금융의 지속가능한 손익 기반을 마련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농협금융은 '신뢰를 바탕으로 혁신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는 금융그룹'을 전략방향으로 설정했다. △고객 신뢰 △미래 경쟁력 제고 △실력 있는 농협금융 △농협금융 정체성 강화를 중점 과제로 선정해 추진할 계획이다.
농협금융 관계자는 비은행 포트폴리오 강화와 관련해 "농협금융은 생명, 손해, 증권 등의 계열사로 둬 안정적 사업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며 "다만, 그룹 지속성장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지속 점검하며, 유연하게 대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기존 계열사 내실성장과 함께 그룹 시너지 제고를 위해 필요한 M&A, 외부협업 등을 적극 검토할 것"이라며 "금융정책당국의 금융규제 진행사항도 예의주시하고 대응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