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성락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국내 주요 수출 품목에 관세를 물리겠다고 예고하는 등 '관세 전쟁'이 현실화되고 있는 가운데, 국내 20대 그룹 최고경영자(CEO)들로 구성된 민간 경제사절단이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해 본격적인 대응책 마련에 나선다. 탄핵 정국으로 정상 외교가 공백인 상황에서 해당 경제사절단을 이끄는 '재계 맏형' 최태원 SK그룹 회장 겸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평가다.
20일 재계에 따르면 국내 20대 그룹 CEO로 구성된 대미(對美) 통상 아웃리치 사절단이 이날부터 워싱턴 DC 방문 일정을 본격 소화할 예정이다. 경제사절단은 이틀 동안 백악관 고위 당국자와 의회 주요 의원들과 만나 관세를 비롯한 통상 정책을 논의하고, 양국 간 전략적 협력 의제와 대미 투자 협력을 위한 액션플랜 등을 소개할 계획이다.
경제사절단에는 대미 주요 수출 품목인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을 중심으로 철강, 조선, 에너지, 플랫폼 등 한미 경제 협력의 핵심 산업 대표들이 대거 참여했다. 조현상 HS효성 부회장, 김원경 삼성전자 사장, 유정준 SK온 부회장, 이형희 SK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 성김 현대자동차 사장, 윤창렬 LG글로벌전략개발원 원장, 이계인 포스코인터내셔널 사장, 임성복 롯데지주 커뮤니케이션 실장, 주영준 한화퓨처프루프 사장, 이나리 카카오 브랜드커뮤니케이션 위원장, 김민규 신세계 부사장, 구동휘 LS엠앤엠 사장, 스캇 박 두산밥캣 부회장, 채선주 네이버 대외·ESG 정책 대표, 허진수 SPC 사장 등이 명단에 포함됐으며, 선봉장은 최태원 회장이다.
이들은 이날 미국 의회 부속 도서관의 토마스 제퍼슨 빌딩 그레이트홀에서 '코리아·US 비즈니스 나이트' 갈라 디너를 연다. 미국 상·하원 의원, 주지사, 내각 주요 인사 등 150여명을 대상으로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확대를 위한 전략적 협력 필요성을 설명하고, 주요 투자 주(州) 관계자들과 개별 미팅을 가질 예정이다.
다음 날, 현지 시간으로 20일에는 미국 백악관,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들과 면담을 갖는다. 구체적인 면담 일정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대한상의는 "양국 간 산업 협력 강화와 함께 한국 기업들의 미국 내 경제·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실질적인 협력 모델을 제안할 예정"이라며 "구체적으로 미국산 에너지 수입 확대, 조선 분야 협력, 완성차 및 부품 제조 시설 투자, 미국 차세대 원전 개발·소형모듈원전(SMR) 협력, 반도체 공급망 구축을 위한 공동 연구개발 등을 논의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재계에서는 최태원 회장을 비롯한 이번 경제사절단의 '민간 외교관'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정 리더십 공백이 이어지고 있는 데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압박 수위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어서다. 앞서 철강·알루미늄에 대해 25% 관세 부과 방침을 밝힌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수입산 자동차에 대해서도 25%를 거론하며 '관세 전쟁 전선'을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여기에 더해 반도체와 의약품에도 25% 또는 그 이상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미국이 자동차와 반도체 관세를 인상한다면 우리 기업들은 직격탄을 맞을 전망이다.
최태원 회장은 일단 관세 이슈에 대해 말을 아꼈다. 전날 서울 강서구 김포비즈니스항공센터에서 미국으로 출국하는 길에 취재진과 만나 "다녀와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전했다. 국내 반도체가 위기라는 의견에 대해선 "위기도 있고 기회도 있다"고 짧게 답했다.
경제사절단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이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임을 인식시킬 수 있다면 방문 목적을 이루는 셈이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부회장은 "'트럼프발 관세 폭탄'에서 벗어나기 위한 각국의 외교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번 워싱턴 DC 방문은 우리 기업들의 대미 투자 환경을 유리하게 조성하는 중요한 계기"라며 "적극적인 소통을 통해 실질적인 성과를 내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rocky@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