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세 폭격기 트럼프…업계·전문가 ‘스태그플레이션’ 우려
  • 정다운 기자
  • 입력: 2025.02.17 00:00 / 수정: 2025.02.17 00:00
트럼프 임기 4년…국내 기업 미국 내 투자 결정 쉽지 않아
“인플레이션으로 미 유권자 반발 시 현재 공세 빨리 잦아들 수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25%)에 관한 포고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AP·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0일(현지 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철강과 알루미늄 제품 관세 부과(25%)에 관한 포고문에 서명한 후 기자들에게 얘기하고 있다. /AP·뉴시스

[더팩트ㅣ세종=정다운 기자] 마가노믹스(MAGAnomics)를 앞세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13일(현지시각) 보편관세에 이어 세계 각국에 ‘상호관세’를 부과한다고 발표한 가운데,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을 동반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를 업계·전문가들이 제기하고 있다.

◆보편관세 발표 3일만 국가별 차등 관세 예고한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공정함이란 목적을 위해 상호 관세 부과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미국에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 제품에 대해 25%의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포고령에 서명한 지 고작 3일 만이다.

상호관세는 교역 상대국 간 비례해 관세를 매기는 것으로, 예컨대 A국이 고율 관세를 부과해 B국의 수출이 감소하면 B국도 관세를 높여 보복하는 식이다. 보편관세는 모든 국가의 수입품에 대해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관세를 말한다.

더욱이 이날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 지명자는 "상대국의 관세 장벽과 비관세 장벽을 두루 검토해 관세율을 도출할 것"이라며 "우리는 국가별로 협상을 거쳐 차등화된 관세율을 적용하겠다"고 밝혀 세계적인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미 상무부는 오는 4월 1일까지 국가별 검토를 거쳐 관세를 차등 부과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우리나라가 ‘상호관세’ 부과 대상국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미 무역 흑자액은 557억달러(약 81조원)를 기록해, 트럼프 입장에서 보면 무역적자 순위 8위국으로 곱게 보이지 않을 것이란 평가다.

결국, 정부가 나서서 협상으로 풀어야 하는 문제지만 국내 정치 상황을 고려하면 협상 시작 자체마저도 난항이 예상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상목 권한대행이 대통령이 아니란 점에서 진심으로 협상할 여지는 희박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지난 7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과 일본 이시바 총리는 첫 정삼회담을 벌였으나 우리나라는 아직 일정도 나오지 않은 상태다.

◆관세 철퇴에…세계 각국, 대미 협상 ‘촉각’

우선 일본은 발 빠르게 움직이는 모양새다. 지난 12일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중의원 본회의에 참석해 "관세 대상에서 일본이 제외될 수 있도록 미국 정부를 설득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시바 총리는 지난 7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한 바 있다.

하야시 요시마사 관방장관도 이날(미국 시각 11일) 기자회견을 열고 "주미 일본대사관을 통해 일본을 관세부과 대상에서 제외해 달라며 미 정부에 공식 요청했다"고 밝혔다. 유럽연합(EU)의 경우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이 지난 11일 프랑스 파리에서 JD 밴스 미국 부통령과 회동한 뒤 엑스(X·옛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과 당신(밴스 부통령)과의 지속적인 협력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앞선 성명에서 대대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예고한 것과 달리 수위가 한결 낮아졌다.

지난 9일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이달 23일 조기 총선을 앞두고 열린 토론회에서 미국 관세 대응책과 관련한 질문에 "가장 신중한 외교 방식으로 실행할 것"이라며 "EU가 1시간 내로 대응할 수 있다"며 입장을 피력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여러 분야에 관세를 부과하면 미국의 비용이 증가하고 물가가 오를 것"이라며 미국의 관세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EU가 실제 미국과 강대 강으로 맞설 것으로 보는 전문가는 많지 않다. 각국이 대미 협상에서 조금이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전략적 행동으로 보는 게 적절하다는 뜻이다.

사진은 지난 10일 부산 남구 감만부두. / 뉴시스
사진은 지난 10일 부산 남구 감만부두. / 뉴시스

◆美 기업도 트럼프 관세 정책 거부감…"韓 굉장히 불리한 위치"

문제는 이 같은 트럼프의 광폭 행보가 인플레이션을 동반한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미 자동차 제조업체 포드의 짐 팔리 최고경영자(CEO)는 지난 11일 트럼프 행정부가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관세를 부과하면 시장에 전례 없는 타격을 줄 것으로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을 강하게 만들고 미국의 자동차 생산을 늘리겠다고 말했지만, 지금까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큰 비용과 많은 혼란"이라고 비판했다.

즉, 다음 달 12일부터 미국으로 수입되는 모든 철강·알루미늄에 25% 부과하면 수입품을 주로 사용하는 공급업체들은 비용 인상을 피할 수 없다는 얘기다.

미 월가의 거물로 불리는 켄 그리핀 시타델 CEO도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이 미국의 성장에 위험을 가져올 수 있다"고 우려를 표했다.

전문가들은 트럼프가 관세를 협상 카드로 활용해 자국 내 기업·투자 유치를 활성화를 도모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트럼프 의중대로 국가별 차등 관세가 부과되면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발생은 불 보듯 뻔할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특히, 우리나라 경우 원자재 대부분을 외국에서 수입하고 있어 보편·상호관세가 장기화하면 자칫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여지도 존재한다.

더욱이 트럼프 임기가 4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기업이 미국 내 투자를 결정하는 것도 쉬운 문제는 아니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비싼 인건비에도 과거 미국투자의 가장 큰 장점은 장기투자가 가능한 안정성이었다"며 "트럼프가 집권하면서 불확실성이 극단적으로 커졌고, 다음에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수도 있는 상황에서 기업의 대미투자 리스크는 굉장히 높아졌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우리 환율이 널뛰고 있어 생산 원가 상승 등의 문제가 상존해 기회요인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며 "설령 중국을 제치더라도 경쟁자(일본)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우리나라는 굉장히 불리한 위치에 있다"고 덧붙였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트럼프가 아무렇게나 관세를 부과하면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위험이 있다"며 "트럼프가 착각하는 것은 1기 때와 상황이 다른데도 더욱 독하게 나가고 있다는 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은 경제 문제고, 인플레이션으로 미국 유권자들의 트럼프 정부에 불만을 품기 시작하면 생각보다 현재의 공세가 빨리 잦아들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국섬유센터에서 열린 미국 관세 조치 대응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시스
박종원 산업통상자원부 통상차관보가 지난 14일 서울 강남구 대치동 한국섬유센터에서 열린 '미국 관세 조치 대응 회의'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뉴시스

danjung638@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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