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장혜승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잇따른 추가 관세 부과 계획 발표로 관세전쟁의 양상이 복잡해지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지난달 20일 출범하자마자 미국의 1~3위 교역국인 캐나다·멕시코·중국을 겨냥한 추가 관세 부과 방침을 발표하며 무역 전쟁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데 이어 이번에는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 카드를 꺼내들었다. 상대국이 미국에 부과한 관세만큼 미국도 같은 수준으로 상대국에 관세를 매긴다는 취지인데, FTA를 맺은 한국도 안심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나온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프로풋볼 결승전 슈퍼볼이 열리는 뉴올리언스로 이동하는 전용기(에어포스원)에서 "11~12일쯤 상호 관세 부과를 발표할 예정이고 발표 즉시 효력이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7일(현지시간)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의 회담 뒤 기자회견에서 처음 상호 관세 부과 계획을 발표한 데 이어 시점을 다시 한번 구체적으로 밝힌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상호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며 "상호 관세 방식은 특정 국가가 우리에게 특정 금액을 부과하면, 우리도 동일한 방식으로 부과하는 것이다. 가장 공정한 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는 고정된 요율 관세보다 더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상호 관세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올 4월까지 주요국에 '보편 관세(universal tariff)'를 부과하겠다고 예고한 가운데 또 하나의 관세 무기로 상호 관세 도입 의지를 밝힌 것이다. 보편관세는 모든 수입품에 똑같은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트럼프 2기 행정부는 4일부터 중국산 상품에 10%의 추가 보편 관세를 적용하고 있다. 이에 맞서 중국도 10일부터 미국산 상품에 10~15%의 보복 관세를 매기기로 하면서 미중 무역 전쟁이 2차 라운드에 돌입했다.
미국 정부의 관세 전략은 무역 적자를 줄이려는 포석과 함께 대규모 감세 정책에 따라 부족한 세수를 관세 수입으로 메우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 9일 발간한 '트럼프 2기 행정부 관세 조치에 따른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조치는 자국 내 제조업 생산 및 세수 증대, 무역수지 불균형 해소를 목적으로 한다. 미국이 제시한 요구를 수용하자 콜롬비아에 부과하기로 했던 관세를 보류한 사례나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예고했던 보편관세를 한달 유예 조치한 사례가 근거로 제시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단 상호관세 대상 국가나 품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다만 평소 관세를 무역적자 해소 수단으로 언급해온 만큼 유럽연합(EU)을 비롯한 대미 무역 흑자국들이 당장 표적이 될 가능성이 크다.
아울러 상호 관세 적용 범위를 놓고 "모든 국가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밝힌 만큼 무역 적자를 근거로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 압박을 해올 공산도 크다. 한국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98% 이상 관세가 철폐된 사실상의 무관세 국가이지만 지난해 660억달러(약 96조원)의 대미 무역 흑자를 기록했다.
미국이 대표적인 무역수지 적자국이라는 점도 이같은 우려를 키우고 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미국은 최근 대세계 수입이 증가하며 지난해 1~11월 기준 약 1조801억달러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연간 대세계 수입액은 2021년부터 약 3조달러 내외에 이르고 있다. 무역수지 적자 폭은 2021년부터 4년 연속 1조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최악의 경우 한미 FTA 재협상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경고까지 나온다.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을 역임한 캘리 앤 쇼는 지난달 24일 한국경제인협회가 주최한 '트럼프 2.0시대 개막 100시간과 한국 경제' 세미나에서 한국이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에서 안전지대는 아니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현재 통상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우선은 멕시코, 캐나다, 중국이 주요 타겟이 될 것이지만, 한국도 안전지대는 아니며 한미 FTA 재협상 가능성도 열어둬야 한다"고 설명했다.
상호관세보다는 보편관세 도입 여부에 더 촉각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한국무역협회는 중국에 10%포인트, 캐나다·멕시코에 25%포인트의 타깃 관세를 부과하는 상황에서, 전 세계에 10%포인트의 보편관세까지 추가로 부과한다면 한국의 총수출이 132억4000만달러(약 19조3000억원)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양지원 한국무역협회 수석연구원은 "보편 관세 부과 여부가 한국의 수출에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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