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황지향 기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멕시코와 캐나다에 대한 추가 관세를 한 달간 유예하기로 결정했다. 추가 관세 대상국이었던 중국과는 24시간 내 대화를 나누기로 하면서 트럼프발 관세전쟁이 개막 직전 소강국면에 접어들었다. 이에 북미 생산 기지를 운영하는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한숨 돌렸지만, 관세 부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어 불확실성은 여전하다.
3일(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방금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과 이야기를 나눴다"며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 조치를 한 달간 유예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캐나다에 대한 관세 조치도 같은 기간 유예하기로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3대 교역국을 대상으로 예고했던 관세 부과를 연기하면서, 당장 배터리 업계를 강타할 것으로 예상됐던 생산 비용 상승과 수익성 악화 우려는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하지만 한 달이라는 짧은 유예 기간이 끝난 이후 관세가 시행될 가능성도 있어 기업들은 내부 전략 재조정에 고심하는 모양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일 국제비상경제권법(IEEPA)에 따라 캐나다와 멕시코에 25%, 중국에 추가로 10%의 보편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캐나다의 에너지류 제품에는 10%, 기타 모든 제품에는 25%의 관세가 부과될 예정이었다. 멕시코의 경우 에너지류를 포함한 모든 제품에 25%의 관세가 붙으며 해당 조치는 이날부터 시행될 예정이었다. 이번 행정명령에는 상대국이 보복 조치를 할 경우 추가적으로 관세율을 높일 수 있는 조항까지 포함돼 있어 글로벌 무역 갈등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예상됐다.
◆수익성 악화 우려…공급망 전략 수정 불가피
트럼프 대통령의 조치로 조치로 배터리 업계는 생산 원가 상승과 수익성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하고 있다. 기존에 한국 배터리 기업들은 미국·멕시코·캐나다무역협정(USMCA)의 무관세 혜택을 활용해 캐나다에서 배터리를 생산한 후 미국으로 공급하는 전략을 추진해 왔다. 그러나 캐나다산 배터리에 25%의 관세가 부과되다면 생산 비용이 급등하고 가격 경쟁력이 급격히 악화될 전망이다.
설령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더라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배터리 원자재의 상당 부분을 해외에서 조달해야 하는 구조적인 한계 때문이다. 리튬, 니켈, 코발트 등 핵심 원자재의 공급망이 중국과 캐나다에 집중돼 있는 상황에서, 캐나다산 원자재에 대한 관세 부과는 결국 미국 내 배터리 제조 비용 상승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에서 배터리를 생산하더라도 원자재 공급망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지 못하는 이상, 가격 상승을 피할 수 없다"고 말했다.
캐나다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국내 배터리 기업들도 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다. LG에너지솔루션은 스텔란티스와 합작해 캐나다 온타리오주 윈저에 약 49GWh 규모의 배터리 공장을 운영 중이며, 삼성SDI는 캐나다 니켈 채굴업체 캐나다니켈의 지분을 인수해 니켈 생산량의 10%를 확보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SK온은 포드와의 합작 투자 철회 이후에도 에코프로비엠과 함께 캐나다 퀘벡주 베캉쿠아에 합작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었으나 이번 관세 조치로 인해 투자 철회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포스코퓨처엠 역시 제너럴모터스(GM)와 함께 얼티엄캠을 설립해 캐나다 퀘벡에 3만톤 규모의 양극재 공장을 건설하고 있지만, 추가적인 관세 부담으로 인해 사업 지속 여부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기업들 비상경영체제…정부 지원책 필요
전기차 시장의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국내 배터리 업계는 위기 대응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 새 행정부의 정책 방향이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들은 변동성에 대비한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입장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전날 사내 구성원들에게 보낸 메시지에서 "북미 시장에서 정책 변화의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업계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며 "투자 유연성을 극대화하고 생산 라인의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통해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업계에서는 이번 관세 유예 조치가 단기적인 해결책일 뿐 보호무역주의 강화 흐름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특히 트럼프 행정부가 무역 정책을 협상 카드로 활용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기업들은 장기적인 리스크 관리 전략을 수립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한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이번 조치는 미국 중심의 보호무역주의가 더욱 강화된 것"이라며 "기업들은 공급망 재편을 위한 전략을 면밀히 검토해야 하며 이미 진행된 투자의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세제 혜택과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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