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황준익 기자] 정부가 '줍줍'으로 불리는 무순위 청약제도 개편을 예고하면서 건설업계가 예의주시하고 있다. 지방은 물론 서울·수도권까지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무순위 청약 요건을 제한하면 미분양 적체가 더욱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토교통부는 이달 안으로 무순위 청약 제도 개선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발표할 예정이다. 유주택자의 무순위 청약을 제한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국토부는 지난달 '2025년 주요업무 추진계획'을 통해 무순위 청약 주택이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공급될 수 있도록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무순위 청약은 1·2차 청약에서 미달했거나 계약 포기 등으로 생기는 잔여 물량에 청약을 다시 받는 제도다. 최초 분양가로 공급하고 만 19세 이상 국내 거주자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어 높은 경쟁률을 보여왔다.
무순위 청약이 '로또 청약'으로 불리며 과열 양상을 빚자 정부는 2021년 5월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무주택자로 자격을 제한했다. 하지만 미분양 우려가 커진 2023년 2월 말부터는 사는 지역과 주택 수와 관계없이 누구나 청약할 수 있도록 민영아파트 무순위 청약 요건을 대폭 풀었다.
그럼에도 정부가 다시 제도 손질에 나선 건 주택 공급 물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일단 넣고 보자'는 식의 청약이 다시 시장 과열을 부추기고 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유주택자가 시세 차익 목적으로 청약에 뛰어들어 시장이 과열되는 현상을 막고 무주택자에게 온전히 기회를 주겠다는 취지다.
무순위 청약이 무주택자나 해당 지역 거주자로 제한되면 경쟁률이 많이 감소하고 청약 시장이 안정화되는 효과를 거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시행사, 시공사 등 분양업계에선 무순위 청약 요건이 강화되면 미분양 물량을 털어내기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 건설사 관계자는 "현재 미분양 물량이 쌓이고 있는 상황에서 무순위 청약 요건을 강화하려는 것은 다소 아쉽다"며 "경쟁률이 높은 곳은 극소수로 지방을 중심으로 대부분 준공을 마치고도 미분양 상태"라고 말했다.
현재 분양시장 침체와 고분양가로 미분양 물량은 쌓이고 있다. 특히 국토부가 발표한 지난해 '11월 주택통계'에 따르면 '악성 미분양'으로 꼽히는 준공 후 미분양은 1만8644가구를 기록하며 4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서울 내 준공 후 미분양 가구도 523가구에서 603가구로 15.3%나 급증했다. 준공 후 미분양은 입주가 시작됐는데도 집주인을 찾지 못해 시공사나 시행사가 떠안고 있는 물량이다.
롯데건설이 서울시 성북구 삼선5구역 재개발을 통해 공급하는 '창경궁 롯데캐슬 시그니처'도 지난 3일부터 전용면적 84㎡ 규모 45가구에 대한 무순위 청약을 시작했다.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서대문 센트럴 아이파크'의 경우 지난달 8차 무순위 청약을 진행했다. 지난해 5월 청약을 시작해 오는 6월 입주 예정이지만 아직도 미분양 물량을 밀어내고 있다.
DL이앤씨가 지난해 12월 공급한 경기도 안양시 '아크로 베스티뉴'는 분양 물량의 절반도 소진하지 못했다. 경기도에 첫 하이엔드 브랜드를 적용하면서 전용 84㎡ 분양가가 15억원에 달해 고분양가 논란이 있었다.
김정주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현행 청약제도의 본질은 부양가족이 많아 주거안정이 필요한 장기 무주택자에게 시세보다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는 데 있다"며 "본질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수요자들의 예측 가능성을 확보해야 하며 시황에 따라 변동되는 범위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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