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더팩트ㅣ서울고법=이성락 기자] 부당합병·회계부정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으면서 지난 10년간 이어진 사법리스크를 털어내게 됐다. 이에 그간 대외 활동을 자제했던 이재용 회장은 현장 경영을 재개하며 미래 사업 준비에 본격 시동을 걸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백강진·김선희·이인수)는 3일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자본시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추측이나 시나리오, 가정에 의해 형사 책임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게 법원의 판단"이라며 "검사의 항소에 관한 주장에 이유가 없다"고 판시했다.
앞서 이재용 회장은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최소 비용으로 경영권을 안정적으로 승계하고, 그룹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개입한 혐의로 기소된 바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에 대한 분식회계에 관여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지난해 2월 이재용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합병이 이재용 회장 경영권 승계 목적만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업적 목적도 인정된다고 봤다. 함께 기소된 삼성 전현직 직원들도 모두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법원에 항소했다.

이날 2심 선고로 이재용 회장은 2016년 국정농단 사태부터 햇수로 10년째 겪은 사법리스크를 일단 해소하게 됐다. 사건이 대법원 상고심까지 가더라도, 사실관계는 2심에서 확정된 만큼 뒤집힐 가능성이 낮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평가다. 대법원 상고심은 1·2심 판단에 법리적 문제가 있는지만 살피는 법률심이다.
그간 이재용 회장은 사법리스크 부담으로 인해 경영 활동을 제대로 펼치지 못했다. 구속 수감된 기간을 제외하더라도,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으로만 100차례 넘게 재판에 출석했다. 재계는 경영 환경을 둘러싼 불확실성이 그 어느 때보다 커진 상황에서 사법리스크가 대응력을 떨어뜨렸고, 이 때문에 삼성의 주력 사업 역시 크게 흔들렸다고 분석한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우위를 SK하이닉스에 내주는 등 반도체 분야에서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은 15조1000억원으로, SK하이닉스(23조5000억원)에 크게 못 미쳤다.
무엇보다 미래 준비를 위한 프로젝트 추진에 제동이 걸린 것이 뼈아프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업 총수의 사법리스크는 주요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쳐 신사업 육성에도 부정적 결과를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삼성은 총수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한 조단위 초대형 인수합병(M&A)과 투자가 사실상 멈춰진 상태다.

이재용 회장은 곧바로 경영 전면에 나서 각종 혼란을 수습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대폭 개편한 메모리 부문 조직의 전열을 재정비하고, 사업 전략을 재점검할 것으로 예상된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 트럼프발(發) 관세 이슈 등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당장 풀어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현장 경영도 재개할 전망이다. 이재용 회장은 지난해 10월 필리핀 삼성전기 생산법인을 찾아 MLCC(적층세라믹커패시터) 사업을 점검한 이후 사업장 방문을 자제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 참석한 이후 정중동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매년 명절 연휴를 활용해 글로벌 사업장을 점검하고, 해외 직원들을 격려하는 모습도 올 설에는 볼 수 없었다. 재계 관계자는 "이재용 회장이 다시 사업장을 방문, 현장 경영을 재개하면 사법리스크가 일단락됐다는 메시지를 내부적으로 전할 수 있다"며 "이는 재도약의 모멘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삼성은 이날 판결과 관련한 별도 입장을 내지 않았다. 이재용 회장도 취재진의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다만 그는 2심 최후 진술에서 "저희가 마주한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녹록지 않다. 어려운 상황을 반드시 극복하고 국민의 사랑을 받는 삼성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며 추후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이재용 회장의 변호인단도 앞으로 경영에 집중할 수 있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변호인단은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긴 시간이 지났다"며 "이번 판결을 계기로 (이재용 회장이) 이제는 본연의 업무에 전념할 수 있게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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