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이상빈 기자] "값이 너무 올랐네. 동네든 시장이든 어딜 가든 다 비싸."
지난 20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종합시장 과일가게에서 제수용 배 가격을 본 한 시민이 내뱉은 말입니다. 가격표에는 '1개 1만 원'이 쓰여 있습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상인의 표정도 밝지만은 않습니다. 상인 A 씨는 "8000원에 팔던 건데 가격이 올라서 1만 원이 됐다"며 "여름에 날이 너무 더워서 물건이 다 망가져 물량이 없다. 배는 날이 더우면 망가진다"고 <더팩트> 취재진에게 설명했습니다.
설 연휴를 일주일가량 앞둔 이날 취재진이 찾은 경동시장과 청량리종합시장은 치솟는 물가와 얼어붙은 소비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었습니다. 상인들은 한 명에게라도 더 팔려고 하지만 지갑을 여는 방문객은 많지 않습니다. 물건을 손에 들었다가 놓기를 반복할 뿐입니다.
지난 12일 한국물가정보에서 발표한 전통시장과 대형마트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평균 비용은 각각 30만 2500원, 40만 9510원입니다. 지난 2024년에는 각각 28만 3500원, 38만 1980원이었습니다. 1년 만에 각각 6.7%, 7.2% 올랐습니다.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전통시장 기준 과일류와 채소류 가격이 지난해 대비 각각 57.9%, 32.0% 상승했습니다. 특히 과일류 가격 상승의 주요한 부분을 차지한 것은 '배'였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물가정보는 "사과는 지난해와 비교해 작황을 회복했으나 배는 지난 여름 폭염 및 집중호우로 일소, 낙과 등 피해가 커 생산량 감소와 상품성 저하로 저장량이 줄어들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취재진이 만난 경동시장 과일가게 상인 의견과 다르지 않습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농산물유통정보(KAMIS)에 따르면 지난 20일 기준 배(신고·상품·10개) 소매가는 4만 4636원입니다. 평년(3만 3440원) 대비 33.6% 상승했습니다. 사과(후지·상품·10개)는 2만 6616원으로 평년(2만 5763원) 대비 3.3% 올랐습니다.
지난해 여름을 강타한 불볕더위와 경제 불황 그리고 불안정한 정치 상황 등이 맞물려 새해 제수용 식품류 고물가 현상이 계속되면서 설 대목을 앞둔 전통시장 분위기는 가라앉았습니다.
경동시장에서 채소류를 파는 상인 B 씨는 "토요일에는 사람이 있었는데 일요일에는 없었다. 전에는 명절 한 달 전부터 사람이 많았지만 이제는 안 그러더라"며 "비싸면 사람들이 안 사가니까 싸게라도 파는데 우리가 남는 게 없다"고 고물가로 달라진 시장 풍토에 한숨을 내쉬었습니다.
손수레 대신 검은 봉지만 한 손에 들고 시장을 빠져나가던 시민 C 씨는 "대형마트보다 싸니까 왔는데 살 것만 조금 샀다. 지금은 다 비싸다"고 털어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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