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팩트ㅣ이한림 기자] 국내 상장지수펀드(ETF) 시장 규모가 지난해 처음으로 170조원을 넘어서면서 올해 200조원 시대를 눈앞에 두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침체한 글로벌 자본시장이 미국 증시를 중심으로 호황을 이어가면서 해외 기업이나 주요 지수 등을 포트폴리오에 담은 국내 ETF들의 규모가 급등한 까닭이다.
17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기준 국내 ETF 순자산가치 총액은 173조5639억원으로, 124조4900억원 규모이던 지난해 초 대비 39.4% 급증했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안에 200조원 돌파가 가능하단 전망이 나온다.
ETF 수 또한 지난해 935개를 기록하면서 1000개를 목전에 두고 있다. 지난 2020년 국내 증시에 상장된 ETF가 468개였음을 고려하면 4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셈이다.
업계에서는 ETF 시장 확대 배경으로 해외 주식 투자 수요가 늘어난 까닭으로 보고 있다. 지난해 미국 증권 시장이 금리 인하 기대감과 매그니피센트7(M7, 애플·마이크로소프트·알파벳·아마존닷컴·엔비디아·메타·테슬라)을 중심으로 한 기술주의 성장에 따라 급등세를 이어가면서 관련 지수를 추종하려는 투자자들이 늘었고, 국내에서도 손쉽게 주식처럼 투자할 수 있는 ETF를 바구니에 담은 것으로 풀이된다.
전망도 밝다. 20일 취임식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강력한 자국 중심주의 정책에 따라 미국 증시는 더욱 탄력을 받을 것이고, 이에 해외 지수를 추종하는 국내 ETF들의 수익률도 더욱 날개를 달 것으로 관측된다.
그러나 급성장한 규모만큼이나 커지는 우려는 과제로 남아 있다. 먼저 자산운용사들이 신상 ETF 출시 빈도가 너무 잦다는 지적이다. 신상 ETF들의 성격 또한 소위 잘나가는 테마만 쫒는 경향이 짙어 유사한 형태의 ETF들이 무더기로 출시되는 반면, 일일 거래가 거의 없어 1년 넘게 제자리만 걷는 '좀비 ETF'들이 시장에 정처 없이 떠돌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해 순자산 규모가 1년 만에 5조5000억원가량 늘어나면서 ETF 시장 성장을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는 '커버드콜' ETF가 대표적이다. 커버드콜 ETF는 기초자산을 매수하고 그 기초자산을 특정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매도(콜옵션)하는 상품으로, 콜옵션을 통해 얻은 프리미엄 수익은 배당금으로 사용돼 다른 월 배당 상품보다 배당률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커버드콜 ETF의 순자산 규모가 급증한 배경에는 이면이 감지된다. 2023년에는 커버드콜을 추종하는 ETF가 단 2개밖에 되지 않았으나, 지난해 초 11개가 신규 상장되더니 올해 1월 17일 기준 증시에 상장된 커버드콜 ETF는 총 35개까지 불어났기 때문이다. 자산운용사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커버드콜 ETF를 라인업에 보유하고 있으며, 이중 미국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500을 추종하는 커버드콜만 '타겟', '위클리', '데일리', '배당귀족' 등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증시에 상장돼 있다.
반면 하루 평균 거래량이 10건도 되지 않는 ETF도 수두룩하게 상장돼 있다. 이들은 개장한 지 2시간 가까이 지나고 있는 이날 오전 10시 48분 기준으로도 10건의 거래량을 채우지 못한 곳이 허다하고, 무려 48개의 ETF는 단 1건의 거래량도 기록하지 못했다.
거래량이 현저히 떨어지는 ETF들은 대부분 시가총액 100억원을 채 넘지 못하고 있으나, 최근 거래량이 거의 없는 ETF 중에서는 시가총액 1000억원을 넘는 곳도 찾아볼 수 있다. 이는 시장에서 외면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품 또는 좀비 ETF가 된 지는 오래됐지만 많은 투자자의 자금이 묶여 있다는 의미 등으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일시적 거래량 감소가 아닌 상장폐지가 임박한 ETF들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ETF의 상장폐지 요건은 순자산총액이 50억원 미만으로 3개월 이상 유지되거나, 순자산가치의 기초지수 일간 변동률의 상관계수가 0.9미만인 경우다. 순자산총액만 봐도 이날 기준 50억원 미만인 ETF는 72개에 달한다. 이는 전체 시장에 상장된 ETF 중 7%가 넘는 수치다.
한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자산운용사들의 과도한 신상품·점유율 경쟁에 따른 피로감이 시장에서 발현되기 시작한 것"이라며 "미국 증시가 잘 나간다고 해외 지수만 추종하는 상품들을 너나 할 것 없이 출시하다 보면 이 역시 국내 경제의 질적 성장과는 거리가 먼 얘기가 될 것이다. ETF 시장이 양적으로 크게 성장한 만큼 업계의 자구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