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제마진 하락에 고환율 '설상가상'
석유화학 투자 확대로 돌파구 마련
정유업계가 환율 급등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원·달러 환율이 1450원을 돌파하며 연일 고점을 기록하는 가운데 23일 오후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환전소에서 환율이 표시돼 있다. /서예원 기자 |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정유업계가 환율 급등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불황에 고환율 위기까지 덮치면서 국내 정유업계는 사업 다각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31일 서울 외환시장에 따르면 올해 마지막 거래일인 30일 원·달러는 전거래일 오후 3시 종가(1467.5원)보다 5.0원 오른 1472.5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같은 고환율은 정유업계에 큰 타격을 준다. 원유를 달러로 사들이는 특성상 통상 원·달러 환율이 10원 오르면 연간 환차손(환율 변동에 따른 손해)이 약 1000억원 늘어난다고 본다. 국내 정유업계는 연간 10억 배럴 이상 원유를 수입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으로 지금과 같은 고환율 상태가 유지되면 석유제품 가격을 인상하게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면 수요가 위축돼서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며 "고환율 장기화에 따른 영향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정체된 정제 마진도 악재다. 정제 마진은 최종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등 원료비를 빼고 남는 수익을 말한다. 업계의 손익분기점은 배럴당 4.5달러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올 3분기에는 정제마진이 3.6달러까지 내려가면서, 국내 정유 4사(SK이노베이션·GS칼텍스·에쓰오일·HD현대오일뱅크)는 영업손실이 1조4000억원을 넘길 정도로 실적 부진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4분기 실적 전망도 어둡다는 점이다. 유안타증권에 따르면 싱가포르 복합 정제 마진은 올 3분기 배럴당 3.6달러까지 떨어졌다가 11월 6달러, 이달 셋째 주 5.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6일에는 4.65달러까지 내려와 손익분기점인 4.5달러에 근접했다.
정유업계가 환율 급등이라는 악재를 만났다. 에쓰오일의 샤힌프로젝트 건설 현장 모습. /에쓰오일 |
정유사들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리스크 관리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최고재무책임자(CFO)가 이끄는 환율 리스크 관리 조직 CMC(Cash Management Committee)를 통해 환율 변동 위험을 관리하고 있다.
HD현대오일뱅크는 환율과 유가, 마진 등 주요 시장 위험을 관리하기 위해 CEO를 위원장으로 하는 리스크관리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리스크 관리에서 나아가 사업 다각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석유화학사업으로의 몸집 불리기가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정유사들이 에틸렌 등 기초유분의 원료로 쓰이는 나프타를 공급하면 석유화학 기업들이 이를 분해해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었다. 이제는 정유사들이 석유화학 제품 생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정유사가 이같은 과정을 모두 건너뛰고 원유에서 바로 에틸렌과 같은 석유화학 제품을 만들 수 있다면 경쟁력을 높일 수 있어서다.
에쓰오일은 2026년 6월까지 울산 온산국가산업단지 내 42만㎡에 고부가가치 석유화학제품 생산시설을 짓는 샤힌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투자 금액은 총 9조2580억원으로, 국내 석유화학 사업 중 최대 규모다.
사업이 완료되면 석유화학 기초원료인 에틸렌을 생산하는 세계 최대 규모 스팀크래커가 들어선다. 연간 180만t의 에틸렌을 생산할 수 있다. 에쓰오일의 석유화학 비중은 현재 12%인데 샤힌 프로젝트가 완공되면 이 비중은 25%로 2배 이상 늘어난다.
GS칼텍스는 2조7000억원을 투자해 여수에 MFC(올레핀 생산 시설)를 만들었다. 이를 통해 연간 에틸렌 75만톤, 폴리에틸렌 50만톤, 프로필렌 41만톤 등 생산능력을 갖췄다. 정유와 석유화학 공정을 연계해 제품 수율을 최적화한 'COTC'(Crude Oil to Chemical) 사례다.
zzang@tf.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