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발 공급과잉·글로벌 경기침체에 불황 장기화
인적 쇄신으로 위기 대응력 ↑, 고부가 스페셜티 중심 사업구조 재편
롯데케미칼 및 화학군 총괄 대표에는 이영준(사진) 신임 사장이 선임됐다. 지난해 발탁한 이훈기 대표는 1년 만에 교체됐다. 사진은 롯데케미칼 여수 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
[더팩트ㅣ장혜승 기자] 불황의 늪에 빠진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 인사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임원 승진 폭을 최소화할 뿐만 아니라 취임 1년 만에 대표이사를 바꾸는 초강수 카드를 꺼낸 회사도 등장했다.
6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 국내 정유 및 석유화학 업체들의 임원 인사 승진 규모가 전년 대비 크게 줄었다.
롯데그룹은 지난달 28일 발표한 인사에서 롯데케미칼의 미등기 임원을 약 30% 정도 축소했다. 올해 3분기 기준 미등기임원은 91명이지만 약 60명대로 줄인 것이다. 이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 롯데알미늄, LC USA(롯데케미칼 미국) 등 롯데그룹 화학군 계열사 임원 10명도 교체했다. 이는 롯데그룹이 각 계열사에 내린 임원 규모 축소 가이드라인 지침에 따른 것이다.
롯데케미칼 및 화학군 총괄 대표에는 이영준 신임 사장이 선임됐다. 지난해 발탁한 이훈기 대표는 1년 만에 교체됐다.
롯데케미칼 수장에 오른 이영준 신임 총괄대표는 고려대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뒤 카이스트(KAIST)에서 고분자공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1년 삼성종합화학에 입사 후 제일모직 케미칼연구소장, 삼성SDI PC사업팀장 등을 역임한 엔지니어 출신의 화학소재 전문가다.
지난 2016년 롯데그룹에 합류한 뒤 범용 기초화학 소재 생산에 집중돼 있던 롯데그룹 화학군 계열사의 스페셜티 제품 포트폴리오 확대를 진두지휘했다. 롯데는 이 신임 총괄대표에게 스페셜티 전환 가속화를 주문한 것으로 보인다.
분위기 반전을 위한 인사라는 평가가 나온다. 한때 롯데그룹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롯데케미칼의 최근 누적된 적자는 그룹 전체의 유동성 위기론을 불렀다. 올해 1~3분기 누적 적자만 6600억원에 달한다.
문제는 석유화학업계가 누적된 중국의 공급 과잉과 수익성 악화로 회복을 기대하긴 어렵다는 점이다. 중국 정부는 2016년 무렵부터 글로벌 석유화학 산업 패권 장악을 위해 7대 석유화학산업단지 구축에 나섰다. 그 결과 중국은 석유화학 산업의 핵심 원료인 에틸렌을 지난해 기준 2020년 3200만톤보다 약 60% 많은 연간 5174만톤 생산 중이다. 지난해 한국이 생산한 에틸렌 1280만톤의 약 4배다. 이에 따라 2010년 47.8%였던 한국의 대중 석유화학 제품 수출 비중은 지난해 37.3%까지 하락했다.
이러한 대외변수에도 대대적인 인적 쇄신이 이번 석유화학업계 인사에서 단행됐다. 지난달 27일 임원 인사를 단행한 GS그룹 역시 정유·석유화학 등 당분간 어려운 업황이 예상되는 사업조직 재정비에 나섰다. GS칼텍스의 경우 조직 구조를 효율화하고 운영 최적화를 통한 내실 다지기를 이어가기로 했다.
불황의 늪에 빠진 국내 정유·석유화학업계 인사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롯데케미칼 여수공장 전경. /롯데케미칼 |
에너지 전환 등에 대비해 에너지·발전 계열사 수장들도 대거 교체했다. GS EPS 대표에는 GS E&R 대표를 맡고 있던 김석환 사장이 이동했으며, GS E&R 신임 대표에는 김성원 부사장, GS동해전력 신임 대표에는 황병소 전무가 각각 임명됐다. GS파워의 대표이사 유재영 부사장은 사장으로 승진했다.
GS그룹 관계자는 "당분간 어려운 업황이 예상되는 사업 영역은 선제적인 조직 재정비를 하는 등 위기 대응력을 높이는 것"이라며 "향후 경기 회복 시 인력과 조직을 확대할 준비 차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HD현대오일뱅크는 총 6명이 임원으로 승진해 지난해 5명과 유사한 수준이지만 2022년 10명과 비교하면 승진 규모가 크게 줄었다. 아울러 지난달 14일 현장통으로 알려진 정임주 부사장과 함께 그룹 재무지원실장을 거친 송명준 사장을 HD현대오일뱅크 공동 대표로 내정했다.
SK이노베이션도 지난 10월 SK E&S와의 합병을 앞두고 계열사인 SK에너지, SK지오센트릭,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 등 계열사 3곳의 최고경영자(CEO)를 교체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발 공급과잉과 글로벌 경기침체 장기화에 따른 수요 하락 등의 악재가 지속되면서 경영진 교체 이후에도 당장 눈에 띄는 성과를 내긴 어려울 것"이라면서도 "경영진 변경을 통한 조직 쇄신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아끼고 스페셜티 전환 등 구조 재편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zzang@tf.co.kr